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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Men - The Architect
by Peter Handrinos


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캠든 야드를 비롯한 획기적인 볼파크들을 설계한 HOK Sports(각종 스포츠 시설의 독점적 설계로 아주 유명한 건설회사 - 역자 주) 대표인 조 스피어와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지어라, 그러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렇다. 옥수수밭에서 들려온 신성한 목소리가 조 스피어에게 이러한 계시를 내렸다는 증거는 없다. (영화 꿈의 구장에서 캐빈 코스트너가 옥수수밭에서 구장을 지으라는 계시를 받음 - 역자 주) 그러나 계시는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국 스피어는 역사상 가장 찬사를 받고있는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볼파크가 생겨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된 건축가가 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팬들은 말 그대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피어는 캔자스시티에 본부를 두고있는 HOK 스포츠 및 회의, 이벤트부의 설립자이자 설계담당 디렉터이기도 하며, 그의 회사는 1992년 볼티모어의 캠든 야드로 데뷔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첫번째 회사가 되었다. 그후로 수년동안 스피어는 클리블랜드(1994년 제이콥스 필드), 덴버(1995년 쿠어스 필드), 샌프란시스코(2000년 SBC 파크), 디트로이트(2000년 코메리카 파크), 신시네티(2003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 필라델피아(2004년 시티즌 볼파크), 그리고 샌디에고(2004년 펫코 파크)에서 캠든 야드에 대한 반향에 버금가는 인기만점의 프로젝트들을 잇따라 수행해왔다.

총체적으로 스피어와 그의 HOF 동료들은 30개의 메이저리그 볼파크중 24개를 설계 또는 리모델링해왔으며, 동시에 많은 기대를 받고있는 워싱턴의 플랜을 진행하면서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과 쉐이 스타디움의 후속프로젝트를 준비중에 있다.

그러나 아마도 조 스피어의 업적 중 가장 의미있는 것은 그가 헬무트, 오바타, 카사바움과 함께 성장시켜온 회사가 야구장과 스탠드에 꽉 들어찬 관중이라는 결과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일 것이다. 2004 시즌에 각 팀들은 HOK사에서 신축한 새 구장이 4~5시즌동안 그들의 승률을 0.075% 이상(기존 홈구장에 비해 시즌당 평균 12승을 더 거두게 해주었다는 말이다) 증가시켜주었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리고, 팬들도 그에 따라 더 들어왔다. 새로운 볼파크는 종전의 구장에 비해 게임당 16000명 이상의 팬들을 불러모았다.

야구계 건설의 새로운 세대는 이런 성공가도로 나타났지만, 모순적으로 그것이 야구계에서 얼마나 혁명적인 사건이었는지는 쉽게 간과되곤 한다. 사실 캠든야드와 그 구장으로 성공을 거둔 이들은 당시의 볼파크 트렌드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황폐한 도시로부터의 피난처를 대신해서 새로운 구장은 팬들의 고향같은 느낌을 주는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인공잔디와 풋볼 겸용 경기장같은 당시의 트렌드 대신, 그들은 그들만의 '자연 그대로의' 스타일로 볼파크를 설계했다. 똑같은 외야길이와 콘크리트 외장의 쿠키 커터(과거의 트렌드였던 전형적인 구장 스타일 - 역자 주) 플랜 대신, 스피어의 새로운 접근방법은 예술적이고 개인적인, 별다른 터치가 들어가지 않은 벽돌 아치와 구식 시계, 필드 형태들이었다.

새로운 구장이 거둔 필드 내외의 성공에 더하여, 팬들은 좀더 큰 발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이 아마도 조지 윌(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 역자 주)이 캠든야드의 개장을 재키 로빈슨의 인종차별 극복이나 프리에이전트의 태동같은 위대한 사건들과 동일선상에 놓은 이유일 것이다. 한 팬사이트에서는 1992년 4월 6일이 야구계에 의미하는 것은 1776년 7월 4일(미국의 독립선언일)이 계몽사상에 의미하는 것과 같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실제생활에서 보는 '꿈의 구장'. 이보다 더 바라기도 힘들 것이다.

이 모든 것들 가운데서 어린시절에는 메이저리그의 꿈도, 건축가로서의 계획도 없었던 한 남자의 놀라운 커리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에 몹시 바쁘면서도 매우 느긋한 조 스피어는 오늘날 스포츠 세계에 좀더 주목할만한, 그리고 영향력있는 커리어에 대해 논하고 있는 중이다.


Q : 어릴적에는 야구팬으로 자랐습니까?

광팬이었다고 말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전 파슨스라는 캔자스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카디널스 팬이셨습니다. 로열스가 1969년에 창단된 후에도 말이죠. 할아버지는 티비를 갖고계셨지만, 잭 벅의 라디오 방송을 좋아하셔서 티비를 꺼놓고 지내셨습니다. 티비보다는 라디오를 더 좋아하신거죠.

Q : 야구선수로서는 어떘나요?

전혀 좋지 않았죠. 피위리그(게임)조차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어릴때 재미삼아 몇번 한 정도죠.

Q : 어린 시절에 메이저리그 구장에 대해 알고있었습니까?

개인적으로 15살 이전에는 메이저리그 게임에 가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VFW 리그경기를 보러 다녔지요. 팀이 우리 마을에 오는 날이면 말 그대로 빽빽하게 들어찬 모자들 사이로 지나가야 했습니다. 파슨스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어린애들은 언제나 공터에서 야구를 하며 놀았거든요.

Q : 언제 처음 건축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나요?

원래 건축가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전 언제나 그림을 그리곤 했고, 그런 종류의 예능활동을 좋아했지요. 종교계 학교에 다녔었는데, 그곳의 상담선생님이 저의 커리어를 고민해보라고 하시면서 저의 재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하라더군요. 제도사가 되는게 어떻겠냐고 충고를 듣고, 전 몇년간 파슨스 주니어 컬리지에 다녔습니다. 그때 공업제도반의 조교가 제도사보다는 다른걸 해보는게 어떠냐고 물었고, 마침 저는 제도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격려를 받아 건축 프로그램에 들어갔어요.

아주 멋졌죠. 정말 재미있었구요. 그 이후에 캔자스 주로 이사를 가서 그 조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76년에 학교를 졸업했는데, 그당시는 오랫동안 불황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캔자스 주는 취업알선 프로그램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있었지만, 캔자스시티에서 몇개월간의 직업을 얻는 것에 불과했죠. 제가 3명의 파트너의 이름 - 맥코이, 허친슨, 스톤 - 을 딴 조그마한 회사를 그만둘 무렵에 데니스 웰너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몇년간 작은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었고, 데니스는 론 라빈스키라는 사람과 가끔 일하곤 했었죠. 론은 이미 스포츠와 관련된 많은 일들을 하고있었는데, 그가 한 일중에서는 트루먼 종합경기장이나 애로우헤드 스타디움, 카우프만 스타디움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가 데븐 제임스라는 회사로부터 데니스를 스카웃 했습니다. 데니스는 가끔 나에게 일을 맡겼고 말이지요.

우리는 첫 3년동안 한두번 정도 컵스의 리글리 필드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뭔가를 제대로 시작하게 된건 론이 인디애나 폴리스의 후셔 돔에 입찰했을 때 부터였습니다. 그는 끝까지 심혈을 기울였지만 결국 그 일을 따내지는 못했고, HNTB라는 회사가 그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론은 우리들 - 데니스, 크리스, 카버, 릭 데플런, 그리고 나 - 에게 스포츠 관련 회사를 시작해보자고, 그리고 후셔돔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전환점이었죠.

다시 3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회사의 마인드나 철학 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또다른 전환점을 맞기 위해 1983년에 HOK를 설립했죠.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겁니다.

Q : 그럼 그때부터 현대적인 볼파크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겁니까?

예. 우리는 애틀랜타 - 풀턴 컨트리 스타디움, 필라델피아의 베테랑 스타디움, 쉐이 스타디움같은 구장들이 복합기능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당시에는 풋볼/야구 겸용구장이 싸고, 단기적인 시각으로는 좋아보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 그런 설계관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그런 프로젝트들이 돈낭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야구 전용, 풋볼 전용으로 짓는게 더 이득이지요. 팬들이 구장을 사랑하게 되고, 그게 오래도록 지속되려면 말입니다.

Q : 언제부터 볼파크 건축을 하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까?

HNTB와 HOK가 예전에 맡았던 일들은 기존 구장을 증설하거나 리모델링 하는 것이었습니다. 컵스는 그들이 가진 매력의 키포인트가 바로 리글리 필드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있었죠. 그들은 그 구장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소중하게 다뤘습니다. 리글리의 정신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절대 원치 않았고, 팬들에게 쾌적함을 제공하려는 일에도 그들이 야구의 신전처럼 다루는 야구장에는 상처를 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우리가 '야구는 콘크리트로 된 괴물같은 구장엔 어울리지 않는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작은 구장, 확 트인 시야, 좀더 가까운 관중석에서 팬들이 가장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다.' 라는 생각을 실현한 것은 파일럿 필드 프로젝트를 맡고나서 부터였습니다. .

Q : 그때의 경험은 어떘습니까?

파일럿 필드 건은 제생각에 아주 긍정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당시 버팔로 시 당국에는 척 로스노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당시에 그 도시는 실직으로 인해 아주 비참한 시기였죠.척은 이 사실을 잘 알고있었고, 마이너리그 구장을 건설함으로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 했습니다. 파일럿 필드의 역할 중, 건설관련 일자리 창출은 일부에 불과했죠. 그는 펜웨이와 리글리를 예로 들면서 '이 건설직 창출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팬들이 경기장으로 몰려드는 동안 야구장의 주변환경에서 - 바, 레스토랑, 가게, 호텔들까지 - 창출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일자리들을 알고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아이디어의 조화를 통해 척의 팀과 우리들은 함께 버팔로의 유니크한 프로젝트를 추진해나갔습니다.

Q : 볼티모어의 캠든야드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건가요?

음.. 주지사인 쉐퍼 씨는 콜츠(볼티모어에서 연고지를 옮겨 지금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가 된 NFL 팀)가 1983년에 그 도시를 떠난 뒤, 바로 새 구장 건설을 지시했습니다. 애초부터 볼파크에서 킥오프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였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거죠. 어쨌든 수년간 그들은 왜 콜츠가 인디애나폴리스로 떠났으며, 어떻게 하면 새로운 NFL 팀을 다시 볼티모어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진행되고 있던 어느 순간에 오리올스가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한거죠. '우리는 기억 안나시나요? NFL팀이 하는 일은 우리도 할 수 있다구요.'

우리 회사는 새로운 오리올스 볼파크의 위치선정을 위해 리스트를 만들었고, 경제적 발전가능성이라는 면에서 한 지역을 낙점했습니다. 그때는 마침 파일럿 필드가 꽤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을 시점이었고, 버팔로에서 척 로스노우의 아이디어가 성공을 거두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런 구장신축 프로젝트가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었죠. 그런 것들이 우리가 새로운 건설 프로젝트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 왜 지금의 캠든야드 위치로 결정하게 된겁니까?


음.. 두가지 중요한 요소가 캠든 야드의 부지선정을 쉽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첫째로 주차공간 등의 이유때문에 기존 기반시설이 적은 곳을 택해야 했죠. 두번째로 현재 캠든야드의 위치는 그당시 낡은 철도가 깔려있던 지역이라 경제적인 파급효과의 잠재력이 가장 좋았었습니다.

그 위치는 그당시 생각들과는 많이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새로운 구장이라고 하면 60년대의 다저 스타디움이나 70년대의 리버프런트 스타디움처럼 으레 도심지와 먼 곳에 짓는게 당연하게 생각되었지요. 그게 계기가 되었지만, 야구는 언제나 도심지의 비지니스 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존재였습니다. 마치 레스토랑이나 바, 혹은 주차장의 주인에게 '좋아. 이제부터 1년에 부활절을 81번 치르도록 하지'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소리죠. 그런 효과들은 납세자들이 낸 세금의 투자를 사회적 이익으로 환원함으로서 정당성을 부여해주었습니다.

Q : 당신이 설계한 볼파크들은 도시를 소생시키는 촉매제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볼티모어나 디트로이트같은 곳에서는 말이지요. 캠든야드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때, 주차나 교통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었습니까?

아니요. 교통의 흐름에 대한 연구들을 수행한 결과, 고속도로와 주요 간선도로들 등의 영향으로 인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었습니다 지금은 주차 상황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지만요 1910년에 지어진 낡은 리글리 파크같은 경우엔 당시 1000대 정도의 주차공간이 있었을 뿐이지만, 요즘의 야구장은 거의 18000대에 육박합니다. 그래서 도심이라는 위치에 있다고 주차가 꼭 빡빡한 것만은 아니죠.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반마일만 가면 야구장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경기가 끝나면 야구장은 좀더 빨리 비워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가던길을 멈추고 맥주나 소다수 같은 것을 사먹을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 것이죠. 좀더 효과적이고 풍요로운 경험이 될겁니다.

Q : 제가 당신의 설계를 접하면서 발견한 것은 바로 컵스의 '리글리빌'이나 레드삭스의 '요키 웨이' 처럼 야구장 옆에 붙어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두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감압 지역'(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곳)이라 불리는 곳들 말이죠.

건축이라는 딱딱한 주제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야구라는 것을 좀더 재미있게 만들만한 아이디어들 나오는 법입니다. 구장 어디에서든지 그런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고, 특히 도심지 구장에서는 '야구를 보러간다'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야구장을 돌아다니거나, 차를 몰고 다닐때면 일상에서의 압박감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평상시와는 다른, 좀더 재미있는 장소로 들어설 수 있는 겁니다.

오리올스는 그런 면에서 좋은 동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당시의 팀 사장이던 래리 루치아노는 매우 밝은 사람인 동시에 유토 거리같은 곳이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지요 샌디에고에 파드리스의 오너였던 존 무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이런 장소들이 도시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Q : 음.. 샌디에고의 '공원 안의 공원 - The Park at the Park' 은 그런 경향이 좀 강한 것 같았습니다.

아마 당신도 아시겠지만, 래리 루치아노는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죠. 파드리스가 펫코파크 시설에 대한 플랜을 짜고있을 무렵, 그가 오리올스에서 파드리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래리가 아마 '공원 안의 공원'이라는 컨셉을 처음 도입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가 일본에 어떤 전시회에 갔는데 야구장이 말 그대로 도시 공원 바로 옆에 붙어있었답니다. 그들은 며칠동안이긴 했지만, 외야 펜스 너머에서 축제를 열었다고 해요.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고, 그러한 것을 어떤 방식으로 야구에 접목할지 생각해냈죠.

Q : 그런 종류의 큰 프로젝트를 구상한다는 것은 언제나 도전일 것 같습니다. 볼파크를 디자인함과 동시에 당신도 공공극장이나 거대한 시설물을 설계하거나 도시의 마스터 플랜을 짜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시지는 않았나요?

오, 언제나 수많은 다른 목표들이 존재하지요. 3개의 머리를 가진 고객 - 오너와 시, 그리고 주 - 이 실제로 필요로 고, 원하는 것들을 결정할 수 있도록 매번 도움을 주는 것 또한 우리 도전의 종착점 중 하나입니다.

Q : 관중으로서의 시각, 엔지니어로서의 시각, 도시 계획자로서의 시각 중 어느것이 당신에게 가장 주요한 관점이 되나요?

나는 개인적으로 팬의 입장에서 야구장을 구상하곤 합니다. 우리 프로젝트들의 진짜 성공담은 건축이나 설계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팬이 즐길 수 있는 구장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팬들이 야구장과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그들이 오리올스, 인디언스, 또는 로키스나 자이언츠, 타이거스, 레즈, 필리스, 파드리스가 그들의 구장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제가 가장 원하는 바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점인데.. 전 어째서 리글리 필드나 펜웨이 파크같은 장소들이 그 오랜 시간의 시험속에서도 살아남아있는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건 바로 그 구장들이 그들의 환경을 그런 효과적인 방법으로 포용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저의 현재 플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가 워싱턴에 완벽하게 들어맞을 수 있을까?' 라는, 소위 맞춤형이라는 것이죠.

Q : 그럼 야구 건축물을 팀의 홈에 잘 들어맞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그 도시에 대해 가장 상징적이며, 아이러닉하기까지 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이죠.

클리블랜드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아마 캠든야드의 92년 개장을 앞둔 겨울에 우리가 프로젝트에 낙점되었을 떄였을 겁니다. 그들은 '그럼 대중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해주십시오.'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파일럿 필드와 캠든 야드의 랜더링에 대한 약간의 슬라이드 쇼 - 그당시에는 아직 슬라이드를 사용할 떄였죠 - 를 준비했습니다.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세번째 줄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 남자는 야구모자를 썼던 것 같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스피어씨. 당신은 버팔로나 볼티모어에 있는게 아니라 클리블랜드에 있는겁니다. 전 이 야구장이 어떤식으로 우리에게 유니크한 존재가 될 것인지를 알고싶군요.' 전 이렇게 답했죠. '음.. 우리는 바로 어제 고용되었고, 답변을 드릴 만큼 이 도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야구장을 클리블랜드의 유일한 존재로 만들라고 주문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커뮤니티에 대해 알게되자마자, 우린 야구장과 연관지을 수 있는 괜찮은 건축적인 특징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쿠야호가 강을 건너는 여러 다리들에는 그런 것들이 상징적으료 표현되어있죠. 만약 거기에 가보신다면 아주 인상적인 모습을 보게 되실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거의 조각공원이라고도 볼 수 있죠.

우린 그걸 보자마자 '대단해. 야구장 안에 건축적인 요소를 알아볼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어 넣자고. 실제로 풍경을 묘사한 요소들을 넣는다면 이런 다리들같은 구조물이 될 수 있을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타이밍이 좋았던게, 그당시 클리블랜드는 낡고 네거티브한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노력중이었고, 우리는 차별화된 뭔가를 하는데 관심이 많았거든요.

Q : 이런 지난 프로젝트들에서 당신은 또다른 방식으로 과거의 관례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야구장들은 비대칭적인 외야와 외야 펜스모양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왜 그런 방향으로 진행하신 겁니까?

캠든 야드의 오리올 파크가 첫번째 시도였죠. 그리고 그 이후로는 팀들이 그런 방향을 원했습니다. 배리 본즈가 필드의 특정한 지역으로 홈런을 날리는지, 다른 특별한 플레이가 또다른 필드에서 가능한지를 재보는 일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었죠. 그런 종류의 것들이 게임의 결과를 바꿔놓을 수도 있고, 그렇기에 좀더 풍요로운 면을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도전은 우리에게 야구장을 예술적으로 만든다는 진짜 이유 - 볼파크의 치수를 바꾸는 - 를 발견하게 해주었죠. 각자의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단지 그린 몬스터나 B&Q 창고 등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그런 특징이 존재해야 하는 지역적인 이유들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Q : 당신 작업의 흥미로운 면 한가지는 그 지역의 특징적인 생각들을 실제로 볼파크에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설계한 모든 구장들은 건축 내장재같은 부분에서도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그게 우리가 원하던 것이죠. 그 최고의 예시로 아마 샌프란시스코를 들 수 있겠네요. 내가 기억하기로, 그 프로젝트를 맡았던 초기에 자이언츠 오너인 피터 매고완과 사장인 래리 베어는 우리에게 파트너 그룹에 들려서 설명을 해달라는 요구를 했었습니다. 우리는 그당시에는 디자인 일이 많이 되어있지 않았었기에, 어떻게 프로젝트가 그 지역에 잘 들어맞을지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을 해나갔지요. 프리젠테이션 전날밤에 갑자기 부두로까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길은 베이(맥코비 만)와 야구장을 구별해주는 공공도로였거든요.

한번은 딘 매크리스에게 이런 말을 했었죠. '우리가 과연 이걸 개막일까지 끝낼 수 있을까?' 그가 이러더군요. '조, 만약 그런소리나 하려거든 당장 짐싸서 캔자스시티로 돌아가라구요.' 그들은 샌프란시스코의 해안을 낙관적으로 생각했고, 우리는 대중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요소들을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어쩄거나 우리가 부두로와 경기장을 같은 높이에 놓아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HOK 건축가인)크레이그 메이어는 '벽돌에 구멍을 뚫어놓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크레이그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죠. 외야 벽에 아치들을 만들어놓고 그걸 통해서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경기장 안팎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그럼으로서 공공도로를 우리 프로젝트의 일부로 사용한다는 것이었죠.

 

(이걸 말하는 듯..)


프리젠테이션은 잘 되었고, 우리는 그 이슈를 꺼냈습니다. 피터는 1초의 망설임도 없더군요. 그는 '정말 멋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래리?' 래리 베어는 그 방법을 쓰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반응에 전 놀라면서도 매우 기뻤죠. 그 부분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트집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사람들은 그렇게 좋게 받아들여줬던 겁니다.

Q : 그 프로젝트는 정말 당신의 일하는 방식에 잘 들어맞았을 것 같군요. 이 모든 것들 - 건설 이후의 경제적 발전, 도심 위치, 유니크한 경관과 필드, 그리고 기능 - 은 야구의 역사가 생기기 이전에도 존재했던 것들이지만, 당신은 그것을 당신만의 효과적인 방식으로 야구장 건설에 재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죠.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에 기대하며 본 아키텍쳐 편이었다.  과거의 천편일률적인 구장, 특히나 한창 유행이던 돔구장에서 벗어난 스피어의 볼파크는 말 그대로 'Park' = 공원답게 단순한 야구장의 이미가 아닌, 가족들이 하루를 보내며 휴식을 취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놀이공원의 개념으로 자리잡았고, 특색있고 아름다운 구장을 메이저리그의 상징으로 만들어주었다.

특히나 Bay라는 지역성을 너무나도 잘 살린 샌프란시스코의 그림같은 구장, AT&T 파크는 피어스가 말했듯이 자연과 조화시킨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번역하다가 우연히 샌프란시스코 홈피의 구장 파트에 들러보았는데, 퍼시픽 벨 파크(아직 이 이름이 가장 정감있고 좋다..^^)의 모든 벽돌에는 각자 임자가 있었다. 마치 절에 가면 자기 이름을 새긴 기와를 놓듯..  게다가 검색창에서는 자기 벽돌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었다.

짓는건 건축가지만 운영하는건 구단이다. 창의적이고 뛰어난 건축가와 구장보다도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는 구단의 마인드가 더 부러워지는 것은 왜일까..-_-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야구장에 간 아이가 자기의 이름으로 된 벽돌을 어루만져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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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5 01: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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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있으면,나는 너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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