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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Men - The Economist

by Peter Handr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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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야구 경제학'에 대한 중요이론의 저자, 앤드류 짐벌리스트 박사와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야구팬이 된다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토론이 존재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임되는 것을 의미한다. 메이스인가 맨틀인가? 쿠팩스인가 마리칼인가? 카디널스인가 컵스인가? 땅콩인가 크래커잭인가? 당신이 해야하는 모든 것들은 이중 한 편에 서는 것이며, 다른 편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이 속해있는 편에 대해 뭔가를 말하면 그때부터 '대화'는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껏 많은 토론이 일어나지 않았던 주제들 중 하나는 야구라는 스포츠의 경제학에 대한 주요 이론들의 정체성이며, 이 주제를 다루는 사람이 바로 앤드류 짐벌리스트 박사이다.

짐벌리스트 박사의 이력서는 야구에 숨어있는 비지니스에 대한 알기쉬운 노하우 목록과도 같다. 1974년 하버드에서 철학박사를 받자마자 그는 스미스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부임했고, 스포츠와 관련된 판례, 연봉조정, 의회 청문회 등의 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수년동안 그는 뉴욕타임즈 같은 일간지에 수십편의 글을 기고하는 한편, 팬들에게는 최근 잘 팔려나가고 있는 그의 야구관련 저서 '최고의 팀이 승리한다(2003)', '국가적 과거 : 어떻게 미국인들은 야구를 하게 되었고, 세계의 나머지는 축구를 하게 되었나(2005)' 등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새 작품, '야구계 최대의 관심사 : 버드 셀릭 시대의 혁명'을 집필중이며 2006년 3월 출간예정이다.


Q : 과거의 글에서 보면 당신은 야구계의 독점상태에 대해, 특히나 자연스럽게 반독점법에서 예외로 있을 수 있는 권리를 즐기고 있는 유일한 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었습니다. 어떻게 야구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설명해 주십시오.

만약 법의 예외에 대해 장기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면, 프로스포츠라는 산업이 미국에 뿌리를 내렸던 1922년부터 살펴보아야 할겁니다. 그들중 가장 큰 것이 바로 반독점법에 대한 면제이죠. 그래서 야구계는 경쟁이 많지 않은 산업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경쟁이 발생할 여지 자체를 없앨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그들은 점점 더 해이하고, 나태하고, 반응이 더디게 되었습니다. 만약 야구계의 주요한 관리상태나 팀 수준에서의 매니지먼트를 살펴본다면 무사안일주의가 판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업가 정신을 도입하거나, 팬들과의 친밀성을 높이고 게임을 발전시키는 마케팅으로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를 만들어가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발전을 모색하는 대신 그들은 뒷짐을 지고서 '우리는 야구계 사람들이다. 우리는 독점적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게임시작 몇시간 전에만 문을 열면 사람들이 밀려들어올 것이다'라는 생각만 하고 앉아있습니다.

약간은 과장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야구계의 매니지먼트 문화가 그렇습니다.

Q : 오늘날에도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는 건가요?

전 그들이 아직 예전의 이미지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비효율성과 해이함을 극복할때 비로소 앞으로 전진해갈 수 있는 것이죠.

50년대 후반에 NFL이 나타나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20년 후에는 NBA가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죠. 그 결과, 야구계는 뭔가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인식의 시점을 커미셔너 보위 쿤의 시대 막바지(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라고 보고있지만, 사실 쿤은 그에 대해서는 전혀 한 일이 없습니다. 피터 유베로스(1984~88)가 스폰서쉽을 성장시키면서 뭔가를 하기 시작한 것이죠. 페이 빈센트(1989~1992) 역시 뭔가를 이뤄낼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고, 대신 새로운 문제점들은 점차 드러나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떄 바로 오너이자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이 등장한 것이었죠. 그는 스포츠 상업화와 비지니스로서의 발전에 대한 야구계의 직접적인 관심을 불러왔고, 그떄부터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야구계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변하려 한 것이죠. 90년대 초에 몇가지 다른 소스와 세력들의 결합에 의해 매니지먼트 문화가 처음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모든 문제들을 다 다루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는 더이상 독점적인 권력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지만, 산업으로서 발전하려면 좀더 예민해져야 합니다.

Q : 하지만 오늘날의 경쟁이라는 것은 몇십년 전, 현재의 프리에이전시가 낡은 보유조항 시스템을 뒤엎은 197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변화는 1970년대 말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선수들에게 많은 연봉을 지불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새로운 수입원을 찾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느렸습니다.

역사적으로 야구계의 문제점은 오너들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이었지요.. 밀워키나 샌디에고, 캔자스시티 오너십에 대한 경험들은 로스엔젤레스나 뉴욕과는 다르기 때문에 항상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곤 했었습니다. 대개 오너들은 자존심이 센 사람들입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 산업의 정점에 올라선 사람들이기에 자신만의 방식과 스타일, 정책 등을 가지고 있죠. 그때문에, 모든 오너들이 야구라는 삼업을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조차 쉬운일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프리에이전트 초기는 비용적인 부담만 있었던게 아닙니다. 오너들이 야구단을 계속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조차 합의하기가 힘들었죠. 그러나 그들이 동의한 단 한가지는 바로 프리에이전시를 분쇄, 또는 억제하고자 하는 열망이었습니다. 오너들이 매우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던 시기였지요.

Q : 전 오너들의 결속력이나 중앙 통제력이 없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종차별, 프리에이전트 시장을 파괴하려는 음모, 반(反) 노조활동 같은 문제들은 오너들이 합심해서 유지시키고자 했던 것 아닌가요? 반면에 팀들은 개별적으로 야구계를 쇄신하고 성장시켰는데 말입니다.

아, 거기에 대해서 말하는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야구계를 중심에서 통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자는 것이죠. 지금 수익이 제대로 분배되고 있나요? 중앙통제적인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스테로이드 문제의 등장에 대해 뭔가가 진행되고 있나요? 이런 것들은 로컬 마켓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로컬 마켓에서 어떤 팀들은 출루율에, 다른 팀들은 타율에 더 비중을 둘 겁니다. 어떤 팀들은 선수육성에, 어떤 팀들은 프리에이전트에 중점을 두겠죠. 물론 이런 것들은 지역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일단 모든 것들은 메이저리그 야구에 의해 만들어진 중심적 기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기틀이라는 것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오너들간의 많은 논쟁이나 불화가 있어왔지요. 전략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장기적 전략 대신 임시방편의 경영이 존재해왔지만, 어떤 산업도 그런 임시방편만을 가지고는 장기적으로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Q : 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메이저리그는 최근 몇십년동안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최소한 관중동원과 총 수익으로만 판단해본다면 말이지요. 90년대 초 이후, 구단들은 점차 협력을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연봉의 압박이 시작된 70년대 후반부터 야구계의 개선이 시작되었고, 팀 수를 확장하게 되었죠.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수익사업의 성공은 장거리통신의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이 거둔 수익 성장의 이유는 꼭 그들이 제대로 된 운영을 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혜택을 본 외부적 요인이라는 것이죠.

Q : 커미셔너 버드 셀릭은 차기 단체교섭 합의문에서 좀더 많은 수익분배를 약속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익 분배는 야구계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서 오너들은 연평균 최소 3억달러는 분배를 해야만 하죠. 그러나 인센티브 구조의 수익분배 시스템의 문제점은 실패한 팀이 보상을 받고, 성공한 팀은 벌칙을 받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 나은 수준으로 팀을 운영하게 되면 사람들을 구장에 끌어들이고, 텔레비젼 시청률을 올려서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되죠. 그리고 더 못한 수준으로 운영한다면 좀더 많은 수익이 자신에게로 넘어오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들은 야구계에서 4번째로 큰 마켓을 연고로 하고있는데, 수익분배 시스템으로 인해 1년에 약 1000만달러 가까이를 돌려받게 됩니다. 아주 불합리하죠. 오너인 데이빗 몽고메리와 빌 자일스는 그들의 팀을 잘 운영하지도, 연고지역에 판매를 하지도 못했지만 야구계에서 가장 큰 마켓 중 하나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 돈을 다 챙겼습니다. 이런건 좋지못한 인센티브의 예라고 할 수 있죠.

레드삭스는 미국에서 6번째로 큰 미디어 마켓과 MLB에서 규정한 18~19번째로 큰 야구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공을 했기 떄문에, 다른 팀들에게 2번째로 많은 수익을 분배해주어야만 했죠. 단지 성공했기 때문에 거의 5천만달러의 돈을 지불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겁니다.

제 관점으로 볼 때, 수익분배 시스템은 잘못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팀들이 꼭 수익에 비례해서 분배를 해야하는건 아닙니다. 연고마켓의 크기에 따라 나누어야 하지요.

Q : 커미셔너는 야구계에서 각 팀들의 경쟁력이 이런 수익분배 시스템과 맞물려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만..

9월에 1차 플레이오프(디비젼 시리즈)에 진출했던 팀들의 숫자를 들여다본다면, 지난 2년간 진출했던 팀들의 절반가량과 근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셀릭은 해답이 수익분배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플레이오프에 관한 위의 사실들로부터 어떻게 수익분배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일까요? 부유한 팀으로부터 돈을 거둬서 가난한 팀에게 나누어주면 가난한 팀들은 그 돈을 선수들에게 투자한다는 가정이 있었겠죠. 만약 당신이 캔자스시티의 구단주인 데이빗 글래스에게 2500만달러를 지급한다면 그는 그 돈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로열스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겁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죠.

수익분배 시스템이란 오직 스타인브레너로부터 돈을 거둬들임으로서 그가 선수들에게 돈을 덜 쓰고, 그 돈이 글래스에게 들어간 뒤에 그가 그것을 포함한 더 많은 돈을 선수들에게 쓸 때만 제기능을 다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최고 부유층의 연봉을 감소시키고, 극빈층의 연봉을 증가시켜야 하지만, 만약 페이롤의 변화에 나타난 모습들을 살펴본다면 그 차이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수치들이 2000년이나 1996년에 비해 오늘날에 페이롤의 격차가 더 늘어났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죠. 수익분배는 연봉 증가율은 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 경쟁력의 균형을 개선시키는 방법은 아닙니다.

따라서 경쟁력의 밸런스가 어떤 식으로 개선되던간에 그걸 수익분배 시스템의 덕으로 돌리는 것은 실수이지요. 오히려 다른 요소들이 더 균형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니지먼트의 발전이나 와일드카드의 도입, 플레이오프 진출팀의 확대 등이 말이죠. 양키스는 점점 더 나이든 팀이 되어갔고, 그것이 다른 팀에게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팀 사이클의 일부일 뿐이지요.

Q : 각각의 프랜차이즈들이 본래 소유하고 있던 부의 격차가 얼마나 경제적인 힘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시장'이라는 것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한 것들은 매우 복잡한 문제 같습니다.

스몰마켓에 대해 종종 간과되고 있는 것 한가지는 바로 다른스포츠와의 경쟁이 적다는 사실입니다. 스몰마켓의 연고지들은 보통 여가생활에 대한 선택의 폭도 좁고, 값비싼 극장이나 박물관, 나이트 클럽을 갖고있지 못합니다. 양키스나 메츠의 경우엔 타 팀에 비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또한 더 많은 여가활동에서의 경쟁자들을 가지고 있죠. 그런 점이 빅마켓의 인구 수에 따른 확연한 이득을 줄여주는 효과를 내곤 합니다.

불행하게도, 야구계에 관한 논의에서 외면받곤 하는 또 한가지는 바로 몇몇 오너들이 팀에 대한 투자에 비해 더 많은 보상을 챙겨간다는 점입니다. 만일 당신이 테드 터너이고 TBS를 소유하고 있다면, 아니면 조지 스타인브레너이고 YES 네트워크를 소유하고 있거나, 탐 힉스이고 클리어 채널 엔터테인먼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일반적인 경우와 좀 다르게 되죠. 예를 들어, 힉스가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총액 $252mil에 사인했을 때, 그는 A-ROD가 팀에 직접적인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구장의 부동산 재산가치와 힉스의 댈러스에서의 평판에도 직접적인 공헌을 할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을 겁니다.


Q : 과거에, 당신은 '야구계의 평등화 - Level the field'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했었습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수준의 목표를 갖고있나요, 아니면 팀간의 절대적인 평등성을 제안하는 것 뿐인가요?

오.. '야구계의 평등화'는 절대적인 평등성을 제안하는게 아닙니다. 좀더 평등해지자는 이야기죠. '평등화 - Level'는 동사(動詞)입니다. 제가 말한 그 문장은 좀더 평등한 야구계를 만들자는 의미인거죠. 누구도 완벽한 평등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공정성, 즉 빅마켓 팀들이 스몰마켓에 비해 약간만 더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거대한 뉴욕 대도시권에 살고있는 천만명의 TV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끼게 되면 TV 시청률은 더 올라가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은 로열스같은 팀들이 때때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를 원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양키스 대신 매년 진출하게 된다면 좋은 시청률은 나오지 않겠죠. (실제로 대도시권간의 월드시리즈 챔피언십이 아니었던 2002년의 월드시리즈 시청률은 예년에 비해 극히 낮았다 - 역자 주)

Q : 경쟁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수많은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십니까?

불행하게도, 그건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좀더 중요한 것은 시간에 따른 결과의 분산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정상과 바닥의 유동성이죠.

미국이 안정적인 국가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곳이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낮은 곳에서 시작하던,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을 거둘 수 있죠. 확실히 요즘에는 누구나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믿음을 어느정도는 갖고있습니다.

전 이것이 야구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팀이 끔찍한 시즌을 보냈더라도, 몇년에 걸쳐 저장고를 거덜내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 팀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몇년 후에는 포스트시즌의 유력한 후보자가 되고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팀이 기회를 갖고있다는 팬들의 희망입니다. 꼭 $208mil의 페이롤을 질러대지 않고서라도 말이죠.

Q : 2003년의 '머니볼' 리뷰에서 당신은 소규모의 예산을 가진 팀이 장기간에 걸쳐 빅마켓 팀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었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책이 빌리 빈의 명석함보다는 스몰 마켓 팀들의 예산부족을 훌륭한 경영으로 메우려는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끼고 계시나요?

빌리 빈이 명석한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전 그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명석하다고 부르지는 않죠. 전 어슬레틱스의 주된 성공담은 투수진 - 그들은 4명의 탑클래스 투수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 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투수들은 세이버 매트리션들의 통찰력이나 빌 제임스와 그의 이론 덕분에 A's로 오게 된 것이 아니었죠. 전 빌리 빈도, 빌 제임스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투수진이 좋은 스카우팅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세이버매트릭스적인 통찰력 덕분에 출현했다는 것은 결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이 잘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책이 야구계와 경쟁력의 균형에 대한 비밀의 바이블로서 주가를 높일만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Q : 그러나 소규모의 예산을 가진 어슬레틱스, 트윈스, 말린스같은 팀들이 수차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이유가 좀더 근본적이고, 건전하고, 혁신적인,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체계적인 사고방식 때문이었는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있습니다. 비지니스로서 야구를 바라보는 당신의 관점에서, 그러한 방법이 유효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스몰마켓의 누군가가 좀더 절약을 하고, 뉴욕의 누군가는 좀더 낭비가 심하다는 그런 생각 말입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게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일이 벌어질때 저는 시장에서의 구조적인 어떤 경향보다는 오히려 비합리적인 경영쪽에서 원인을 찾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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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 중 하나였기에 아주 흥미롭게 읽어간 인터뷰였다. 사실 경졔의 양면 - 수익과 분배 - 중에서 수익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사람은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하긴 MLB가 이미 수익 면에서는 성공적인 모델이 되었기 때문에 '향후 어떻게 그 수익을 유지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야구의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팀간의 균형을 많이 언급한 것 같은데.. 이 사람의 말대로 사치세의 맹점이라 할 수 있는 '오너의 지갑속으로 고고싱하는 눈먼 돈'을 막을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 제프리 로리아같은 분덜을 위해서라도..-_-

이사람은 버드셀릭의 업적보다는 주로 외부의 팩터 - 통신 등의 발달 - 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현재 호황을 달리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성공은 지구 재편성과 와일드카드제 도입 등을 시도한 셀릭의 공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는데 확실히 커미셔너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스테로이드 정책 등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 생각엔 오히려 로컬로부터 중앙으로 집행권이 넘어간다면 부작용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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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Men - The Sportswriter

by Peter Handrinos



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6번의 '올해의 스포츠 기자상'을 수상한 프랭크 데포드와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전통적인 지혜'에 따르면, 프랭크 데포드는 우리시대에 살아있는 스포츠라이터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지혜'는 옳았다.

많은 위대한 기자들처럼 데포드는 다재다능했다 그가 처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입사한 이후, 43년동안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볼링, 롤러 더비까지 이르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스포츠를 커버해왔다. 그는 일생동안 모든 분야의 운동선수들과 가치가 있는 모든 스포츠 이벤트를 표현했다.

그의 필명은 시나리오, 짧은 칼럼, 장문의 에세이, 단행본 저서 등에 등장했다. 그는 인쇄물을 넘어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해설을 맡아왔고, 지난 몇시즌간은 HBQ의 '리얼 스포츠'의 패널로 참여해왔다.

데포드의 재능은 전 세계적인 스포츠의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SI의 주필인 그는 수많은 주요 컨퍼런스에서 연사를 맡았고, 프린스턴 대학의 미국 연구회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소설가로서 '또다른 아도니스'라는 사이코 스릴러와, 세계 2차대전을 다룬 '역사적 로맨스'를 집필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활약을 해왔고. '트레이딩 하트'와 '모든 사람들은 미국인이다'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으며 내년에 촬영 예정인 2개의 영화들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또한, 그의 늦둥이 딸이 낭포성 섬유증을 이겨낸 이야기를 담은 감동적인 회고록, '알렉스, 꼬마의 인생'을 출간하기도 했다.

프랭크 데포트가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글을 썼지만, 그의 작품들은 모두 근사하다. 유려하고 우아한 산문체로 쓰여진 작품들은 그의 이름을 수십년에 걸쳐 14권의 명저들을 비롯한 수백권의 책에 붙여놓았다. 2백만개가 넘는 단어들이 들어간 그의 최근작 '올드 볼 게임'에서 그는 자이언츠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인 크리스티 매튜슨과 존 맥그로우의 우정을 주제로 다뤄 베스트 셀러를 만들어냈다.

그럼 프랭크 데포트 작품들의 질은 어떠한가? 셀수없이 많은 스포츠 팬들은 그들만의 판단을 가지고 있지만, 6차례의 '올해의 US 스포츠라이터' 상을 수상한 것 보다 더 그의 퀄리티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워싱턴 저널리즘 리뷰 어워드의 올해의 잡지기자상. GQ에서 선정한 전미 최우수 스포츠라이터로 선정. 전미 스포츠 캐스터 및 스포츠라이터 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 그리고 에미상과 피버디상 수상.

이 모든 것들은 스포츠라이팅과 야구에 대한 생각들에 관해 데포드와의 인터뷰를 시도해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대화의 개인적인 동기는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데포드의 명쾌한 SI 에세이들은 어린시절, 내가 스포츠라는 것에 대해 좀더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는 우연찮게도 내 고향 근처에 살았는데, 그 덕분에 낭포성 섬유증 재단 리더로서 그가 쌓은 비길데 없는 지역적 명성들은 내가 애-어른으로서 자선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감명을 주었다. 결국, 지난 2년간 그가 나에게 준 자극은 풋내기 칼럼티스트였던 나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코네티컷에 있는 그의 집에서 데포드씨가 나를 반갑게 아주었을 때, 나는 평소때보다 좀더 초조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그와 만남을 갖는 특권을 누렸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이시대 최고의 현역 스포츠라이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Q : 언제 처음 스포츠계에서 미래의 커리어를 꿈꾸게 되었습니까?

전 운동선수가 될거라는 착각은 해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전 나름대로 준수한 고교 농구선수였지만, 그게 다였죠. 그냥 괜찮은 고교 농구선수 말입니다.

전 다소 스포츠를 등한시했었죠 언제나 작가가 되고싶었지만, 그게 꼭 스포츠라이터는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전 뉴욕으로 가길 원했는데, 그때 저에게 온 오퍼중 가장 조건이 좋았던게 바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였습니다. 처음에는 조사원이었구요. 스포츠를 좋아했었지만 그보다도 SI에서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스포츠라이터로 남아있는건 저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지요.

5년 후에 새러데이 이브닝 포스트로 자리를 옮길 뻔 했었습니다. 확실하게 기억이 나네요. 언제나 고민을 하고, 항상 스포츠와는 관련이 없는 글을 쓰지만, 저에겐 매우 행복한 날들이었겠죠

Q : 과거에, 당신은 볼티모어에 살던 어린시절 - 1950년대 - 에 조니 유니터스나 브룩 로빈슨같은 선수들을 보며 자랐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들 중에서 당신이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들이 있나요?

전 우상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 그저 좋은 작가들 - 셰익스피어로 시작해서 디킨즈까지 - 에 대해 감탄을 해왔을 뿐이었어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 작품을 읽었을 때, 경건한 경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 그저 좋은 저작들에 대해 경탄했을 뿐이었죠. 뉴욕 해럴드 트리뷴을 읽으며 당시 최고의 칼럼니스트였던 레드 스미스의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글로부터 저는 스포츠 저작물도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를 능가하는 칼럼니스트는 없다고 생각해요. 600~700개의 단어를 쓰던, 아니면 1000개 이상의 단어를 쓰던, 그는 언제나 완벽하게 글을 썼었죠.

Q : 프린스턴 학부시절에는 현역 농구선수로 뛰기도 했었던 걸로 알고있습니다

스쿼드에 들기는 했어도 유니폼을 입지는 못했었죠. 전 단어 그대로의 '팀원'은 아니었습니다 내 말은, 저도 모든 선수들을 알고있었고 같이 훈련을 했었지만, 2학년동안 내내 레드셔츠를 입고 JV 게임(2군 경기 - 역자 주)이나 뛰었다는 뜻입니다. 전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전혀 잘하지는 못했었던거죠

Q : 당신은 빌 브래들리(70년대 뉴욕 닉스의 전성시대를 이끈 명예의 전당 헌액자, 현역 상원의원 - 역자 주)와 같은 팀에서 뛰기도 했었는데요..

음.. 전 빌이 신입생때 4학년이었습니다. 전 빌이 게임에서 원하는 만큼 득점을 해내는걸 보곤 했죠. 다음해에 제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입사할 때, 전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저를 스마트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나봐요 마치 제가 빌 브래들리를 발견한 것인 양 말이죠. 그리고 첫 기사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Q : 1962년에 대학을 졸업했을 때, 당신은 SI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SI가 그당시에도 대단한 잡지였었나요?

안드레 라구에레라는 새로운 편집장 덕분에 그런 수준에 접근하고 있던 중이었지요. 라구에레는 제가 입사하기 몇년 전에 SI에 들어와서 모든걸 바꾸어놓았습니다. 'SI는 스포츠 잡지야. 그걸 인정하고,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를 쓰자고' 라는 말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를 궤도에 올려놓았죠. 제가 입사했을 62년 당시,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3~4년 일찍 입사했었다면 그떄는 그렇지 않았었겠지요 왜냐면 그들은 '우리는 스포츠에 관한 달콤한 이야기만 써대는 싸구려야'라는 생각만 하고있었을테니 말입니다.

그 결과, 몇년 이내에 SI지는 스포츠 잡지로서 점점 더 커져갔지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습니니다. 몇년만 일찍 입사했더라도 전 그 회사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을 겁니다.

Q : SI지에서의 생활이 당신에게 힘든 변화였나요? 당신이 수많은 분야를 커버해야 했다는 것이 도전의 가장 큰 부분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처음에는 언제나 농구를 맡았습니다. 그당시에는 누구도 그 분야를 맡고싶어하지 않았기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던거죠. 그때는 스포츠가 훗날처럼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던 시기였고 말이죠. 2~3년 후에는 스프링 트레이닝을 다니기 시작했고, 곧 테니스도 맡게 되었죠. 전 언제나 제가 다방면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1970년인가 71년인가에 일단 정규 기자가 되고나서부터는 원하는 주제라면 뭐든 쓸 수 있었죠. 좋은 기사를 쓰는 한, 어떤 스포츠를 다루는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쓴 글중 가장 좋았던게 복싱에 관한 기사 - '복서와 금발머리' (빌리 콘에 관한 기사) - 였을 겁니다.

Q : 당신은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가며 글솜씨를 닦은 것 같습니다. 모든 종류의 주제를 다루어보았, 넌픽션 전기문에서부터 소설, 단편, 그리고 라디오 해설과 TV출연까지 모든 형식으로 손을 뻗으면서 말이죠.

나는 가끔 너무 다방면으로 일해온 것이 아닌가 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한가지 일만을 훌륭하게 해낸 레드 스미스같은 인생을 살았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저는 모든 분야에 발을 담갔죠. 그건 자신이 어디에 더 잘 어울리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방면으로 활동을 한 것이 저에게는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계속 흥미를 유지시켜주었거든요. 전 한 분야에 너무나 오래 머문 나머지 지칠대로 지쳐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렇게 되고싶지는 않았기에 다른 것들에 대한 글도 써보고자 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런 타 분야의 저술이 잘 맞는 것도 같았고 말입니다.

Q : 기자세계의 이방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신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수년동안 모든 분야를 다 합쳐서 3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해왔습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몇권이나 냈는지 세보지는 않았어요. 맞아요. 전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았죠. 다른 분야를 건드릴때면 '고립되었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확실히 어려움을 겪기는 했었죠. 절대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체적으로 미로를 찾아가듯이 저의 길을 가곤 했었지요. 물론 그런 것에 대해 불쾌하게 느낀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글쓰기를 즐겼거든요. 재미이기도 했고, 멋진 인생을 만들어주기도 했죠. 또다시 전 계속 다른 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게 더 재미있었으니까요.

Q : 당신의 많은 저작물들에는 무언가 야심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한번도 프랭크 데포드라는 필명을 '오케이. 카디널스가 뛰어난 수력으로 페넌트레이스를 우승할겁니다' 라는 식의 글에서는 보지 못했거든요. 당신이 쓴 글의 대부분은 역사, 사회적인 해석, 윤리성, 정신분석 등에 관한 것들이었죠.

아.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근본적인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이런 방식, 저런 방식으로 연결해보려는 것이 제가 하려는 일이죠. 전 SI에서 기사보다는 단편에서 진정한 제모습을 발견하곤 했었습니다. 제 말은, 많은 사람들이 단편을 쓴다는 것을 기사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는거죠. 그 둘은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단편은 글의 구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구조에 대한 고유의 느낌을 살린 뒤에 약간의 긴장감을 덧붙여서 줄거리를 꿰어맞추는거죠. 그런 작업들이 저는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일할 수 있었다는건 굉장한 행운이었습니다.

잡지의 주제가 '스포츠'에 국한되어있더라도 그 틀 안에서 모든 부분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긴 시리즈를 집필할 수도 있었고, 섹스나 경쟁, 비지니스, 성(姓)에 대한 것들도 쓸 수 있었죠.

Q : 어떻게 그런 광범위한 시야를 가질 수 있었던 건가요? 예를 들면, 편집자가 '밥 펠러에 대한 글을 목요일까지 3천단어 정도로 해서 갖다줄 수 있겠지?' 라고 한다면 말이죠.

처음에는 그런 벅찬 일정들이 제가 원래 원하는 것들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만 써댔었죠. 말하자면 이런겁니다. 그들이 와서 'XX에 관한 이야기를 써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당신이 '음.. 그건 좀 별로인데요'라고 대답하는건 그들이 원하는게 아니지요. 그래서 그런 대답을 듣더라도 그들은 '그래도 그렇게 써야만 해'라고 말하게 될겁니다. 기회는 장편을 쓸 때 오곤 합니다. 장편은 아주 훌륭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죠. 그들은 장편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것들을 쓰라'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아요. 물론, 나도 모든걸 제멋대로 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들을 스스로의 아이디어로 채울 수 있고, 목표를 향해 조금씩이라도 전진하는 동안에는 모든게 잘 진행되는 것이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편집장이 전권을 쥐고 흔드는 잡지가 아니었습니다 기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잡지였죠. 그들은 주도권을 기자들에게 주었고, 덕분에 그곳은 아주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떠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죠. SI에서는 참 행복했고, 압박감을 느끼는 일은 없었습니다.

Q : 그런 것들과는 다르게 '더 큰 이슈'에서 타인들에 대해 언급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당신은 스캇 오슬러, 토니 콘헤이서, 리키 릴리처럼 유머로 잘 알려진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는데요.

자신과 다른 스타일의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법이죠.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심리라고나 할까요.

Q : 저명한 잡지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이 선수들에게 다가가는데 장애물로 작용한 적은 없습니까?

아뇨. 전 그런 사실을 잇점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해온 일을 잘 알고있었고, 그 덕분에 '이사람 능력이 좀 괜찮은가보군. 무언가를 오픈하고 싶으면 이친구에게 말을 해야겠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Q : 세월이 흐르면서, 스포츠라는 주제는 어디건 상관없이 대화상에서 좀더 중요한 위치로 올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쨌건간에 그런게 일반적인 사실이 되었지요. 우리는 정책이나 심각한 주제를 이야기할때보다는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할때 좀더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전 인생의 심각한 면 보다는 재미있는 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해요.

Q : 당신의 작품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당신의 글쓰기 방식이 운동선수들에게 좀더 다가가기 쉽도록 해주었다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는 피터 제닝스나 탐 브로크(뉴스 앵커)에 대해 알고있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운동선수들에 대해 알고있다고 느끼곤 합니다. 배우들은 좀 다릅니다. 배우는 배역으로서 그들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잘 알기는 쉽지가 않지요. 반면에 운동선수들은 직접 뛰는걸 보게 됩니다. 농구선수들의 경우에 우리는 그들이 옷을 벗고, 심장이 부셔져라 뛰는걸 보고서 그들을 응원하고 이기기를 바라는거죠. 그러면서 우리는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선수들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를 독자들이 알 수 있도록 만든 저의 방식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Q : 당신의 아주 기나긴 커리어로 인해서, 운동선수들의 연평균 소득이 4만달러에서 4백만달러까지 이르는 것을 보아오셨을 텐데요, 그런 큰 돈이 당신의 스포츠에 대한 집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습니까?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주변인물들 - 에이전트, 매니저, 등등 - 이 유입된 것이 좀 힘들었지만, 그에 따라 미디어 역시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전만큼 선수들을 잘 알고지내기는 힘들어졌죠. 그리고 선수들 - 그들중의 일부일지라도 - 이 '더이상 미디어는 필요없어. 왜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하지? 나는 1년에 5백만달러나 버는 사람인데 말야' 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언제나 적당한 시기에 일선에서 뛰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종종 제가 맡았던 프로농구의 한 일화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죠. 그건 레이커스와 셀틱스의 챔피언십 시리즈 마지막 게임때였습니다. 그때 라커룸에서 10분정도를 제리 웨스트와 둘만 남아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고, 다시 빌 러셀과 10분정도를 같이 있었어요. 그당시에는 미디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를 알고있었죠. 요즘엔 라커룸에 들어가는 것 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런 면들이 많이 바뀌었죠.

전 종종 그당시와 요즘 운동선수들을 구분해주는 것은 '좀더 많은 돈'을 버는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제는 선수들이 오프시즌에 다른 직업을 구할 일이 없죠. 예전에는 1년에 4~5개월은 현실세계에서 일을 구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오프시즌에 훈련만 하면 되지요. 그리고 대개는 그들에게 좋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습니다. 그런 돈과 아부들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물론 저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말이죠.

Q : 그럼 스포츠계가 부유해진 것에 대한 긍정적인 면은 없습니까?

운동선수들이 1년에 겨우 몇천달러를 벌어들일 당시에는 그들이 지쳐 쓰러질 때 까지 뛸만한 가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요. 선수들은 31~32살만 되면 원정을 다니는 것에 쉽게 지치곤 했었죠. 미래가 보이지도 않는 운동을 참아낼 필요도 없이, 그저 철물점같은 곳에서 일하기만 하더라도 당시에 운동을 하면서 벌 수 있는 만큼의 돈은 벌어들였으니 말입니다. 오늘날에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도 그때처럼 운동하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그때보다 훨씬 더 전력을 다합니다.

Q : 제가 이제껏 야구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염려스러웠던 것들 중 하나는 모든 스포츠들 가운데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야구라는 게임이 점점 전체적인 스포츠들 안에 편입되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야구가 확실히 다른 것들에 비해 좀더 역사가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구에 대한 가치를 다른 방식으로 평가하곤 하지요. 야구는 할아버지들이 했던 스포츠에요.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에도 존재해왔고 말이죠. 전 야구가 인기를 잃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스포츠도 인기가 생겼을 뿐이죠.

또, 야구계의 여러가지 사건들 - 예를 들면 약물문제라든가 - 이 좀더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스테로이드 문제는
도 그 이유중 하나가 되겠지요. 어떤 방식으로던 스테로이드의 이슈화, 그리고 그에 대한 걱정들은 야구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대변해주고 있으며 야구가 우리 문화에 깊숙히 침투해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Q : 당신의 경험으로 볼 때 다른 운동선수들에 비해 야구라는 스포츠나 야구선수들은 어땠는지를 듣고싶습니다. 야구선수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점 같은게 있습니까?

야구의 특징 중 하나는, 누구나 한번씩은 타석이 돌아온다는 점이죠. 그래서, 야구선수들은 확실히 풋볼선수들에 비해서 개성을 표현하는데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번이 네 타석이야'라는 표현같은게 그렇죠. 2루수로서 .220을 치고있는 선수라도 어떤 특정게임이나 월드시리즈에서라면 히어로가 될 수도 있는게 야구입니다. 분명 '이번이 내 타석이야'라고 말하는 것과는 차이점이 존재하지요.

그리고 야구선수들은 보통 포지션에 따라 성향이 다릅니다. 선발투수들은 유격수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사람들이죠. 릴리프 투수는 선발투수와 유격수 둘 다와 다른 성향을 지닙니다. 그래서 각자 다른 종류의 생활환경이 존재하고, 가끔은 그게 서로 교차하기도 하죠. 감독이 하는 일은 이런 다른 리듬과 다른 페이스, 다른 필요성을 가진 선수들의 능력을 잘 조절하고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Q : 그렇기 때문에 각자 다른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기회도 그만큼 많겠군요.

누군가가 이러더군요. '아무리 강한 기세도 좋은 선발투수 앞에서는 꺾이기 마련이다'라고 말입니다. 일단 투수가 바뀌면 모든 게임이 전체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그게 바로 7게임 시리즈가 야구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이지요. 야구나 하키에서는 같은 내용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7게임이나 시리즈를 치를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선수들이 모든 게임을 플레이하기에 가끔 변화는 생기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이 되는거죠.

차이점은 바로 이겁니다. 만약 당신이 농구나 풋볼게임에 가서 스타들을 보겠다면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평소대로 활약을 해줄테니까요. 코비 브라이언트가 게임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나오기만 한다면 경기에 뛰면서 최소 18점은 넣어주겠죠. 하지만 만약 당신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뛰는 것을 보러 경기장에 간다면 그가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는걸 보고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Q : 다른 운동선수들과는 반대로, 야구선수들 사이에는 좀 다른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스포츠의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경쟁을 합니다. 많은 걱정을 하고 이기기를 원하지요. 모든 스포츠가 다 똑같아요. 야구나 경마나 다 마찬가지인거죠.

하지만 야구의 경우에는 '매일 하는 게임'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3월에 시작해서 10월까지 같은 일을 하는거죠. 예전에 오리올스가 잘나가던 시절, 얼 위버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전 위버에 대해 글을 쓰려던 중이었는데, 마침 그의 팀이 3연패인가를 하던 중이었죠. 기자들이 그의 주위에 마치 세상이 끝난 것인 양 모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배를 피우며 캔맥주를 들고 거기 앉아있었지요. 그가 이러더군요. '이건 풋볼이 아니라구요.' 그의 말이 맞죠. 3연패를 할수도 있고, 행여나 7연패를 할수도 있는거지만 그들은 마음을 편히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바로 야구선수들이 뭔가 다른 점이지요.

또, 야구에는 과시나 자랑, 허풍같은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식으로 잘난척하다가는 궁지에 몰리기 십상이니 말이죠. 야구에는 트래쉬 토크가 적습니다. 가끔 투수나 포수들이 뭐라고 하기는 하지만 그런걸 트래쉬 토크라고 하기는 힘들죠. '이봐, 커브볼을 너한테 맞춰버릴거라고' 라는 식으로는 절대 말하지 않아요. 그 비슷한 말도 안하지요. 전 야구선수들이 '저녀석을 밟아버리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야구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라도 말이죠.

물론 야구선수들이 더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시합을 하는 장소가 다를 뿐이죠. 예를 들면, 디온 샌더스같이 풋볼에서는 트래쉬 토킹으로 유명한 선수도 야구장에 들어와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Q : 그런 이유들 중 하나는 야구선수들이 타종목과는 다른 교육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젊은 야구 유망주들은 NCAA같은 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바로 기용되는 일은 거의 없죠. 일단은 다들 마이너에서 시작하니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야구선수들은 풋볼이나 농구선수들과 같은 방식으로 성장하지는 않죠. 월드 챔피언일지라도 일단 드래프트를 거쳐야 하고, 그다음에는 린스버그, 버지니아나 툴사, 오클라호마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온갖 비바람을 헤치며 성장하는 거죠. 얼마나 훌륭한 선수이건간에 '이봐, 넌 아직 멀었어. 니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산더미라고' 라는 소리를 들으니 말입니다. 반면에 풋볼이나 농구선수라면, NCAA같은 최고수준에서 시작하는게 가능하죠. 야구에서는 비록 스타출신이라도 마이너에 있을때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적은 관중들 앞에서 뛰어야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대학 풋볼스타가 마이너팀 최고의 선수보다도 더 인지도가 있기도 하죠.

Q : 야구선수들의 생각이 타 스포츠와 다른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확실히 야구에는 일정한 견습기간이 존재합니다. 왜냐면 다른 스포츠에 비해 더 연마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기간동안에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러닝백같은 경우, 공을 지키고 커트하는 기초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실제로 그 2가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죠. 아, 물론 야구선수들도 반드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건 아닙니다. 그들 역시도 프로보다 수준은 좀 떨어지겠지만, 대학시절에 같은 스포츠를 해왔거든요. 거기에 더해서, 야구는 '겸손한' 운동입니다. 아무도 '나였다면 더 잘했을텐데'라는 생각같은건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아주 비범한 누군가, 예를 들면 자신만만하고 신뢰감이 높았던 테드 윌리엄스조차도 그가 다른 팀원 대신 그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더 나은 플레이를 했으리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었습니다. 로저 클레멘스 역시 마운드를 내려와야 할 때 '내가 여기 있다면 (불펜투수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아요. 그 대신 공을 건네주고 겸손하게 내려오는 것이죠.

Q : 풋볼이나 농구선수들이 수게임동안 슬럼프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슬럼프'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야구에만 국한되는 단어입니다. 모든것에는 운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야구에서는 직선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는 등의 불운이 있을 수 있죠. 모든 스포츠에서 그건 마찬가지입니다만, 야구에서 좀더 강한 편이죠.

Q : 미래의 플랜은 어떻게 세우고 계십니까?

저는 넌픽션과 픽션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는 소설을 집필중이지요. 몇편의 영화를 할 계획이고, 이번 가을에는 로저 베니스터에 관한 영화(제목은 '4분')가 개봉될 예정입니다. 지금 어떤 목표를 세우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당신도 내 나이(66)가 되면 몸이 허락하는 한 그냥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겁니다. 장기적인 목표같은건 전혀 세우고 있지 않아요. (웃음)

전 제 일에 만족해왔습니다. 그래서 야망, 재능같은 것과는 별 상관이 없지요. 그저 내 일을 하고있다는게 행복한 사실이고, 그게 중요한 겁니다. 만약 일하는걸 중단한다면 아주 힘들겠죠. 제 일은 너무 재미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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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빈 강정??'  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인터뷰였던 듯.  질문과 답변의 몰입도가 전혀 조화롭지 못했던 인터뷰인 것 같다. (-_-)  암튼..  선수들이 부유해지는데 대해 기자들의 시선이 고깝다는 것 하나는 확인할 수 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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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Men - The Doctor
by Peter Handrinos


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커리어를 이어주는 수술' 타미 존 서저리의 선구자인 로스엔젤레스 다저스 닥터, 프랭크 조브 박사와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투수들에게, 부상이란 넘은 '만약'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의 문제이다. 그들에게 부상이란 야구라는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급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동작은 그 자체가 부상의 원인이 된다. 갑작스럽고 격렬한 모션을 반복하는 사이 팔과 어깨의 근육에는 미세한 균열이 가게 되어있고, 수백번, 수천번의 피칭이 지속되면 근육이완과 염좌, 경직 및 통증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 어떤 투수도 고통의 영향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시즌 내내 건강을 100% 가까이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일한 의문은 그 부상이 확대되느냐 사라지느냐의 문제이다.

프랭크 조브 박사는 아마 누구보다도 야구인생에 이런 고통들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을 것이다. 1960년대 초, 로버트 컬란 박사의 파트너로서 그는 피칭에 따른 부상의 원인 및 효과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고, 그때부터 재활수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위대한 명성은 1974년부터였는데, 그때 그는 다저스 선수들의 팔꿈치 부상을 거의 기적적으로 재활시키면서 야구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었다.

수년간, '타미 존'이라 불린 인대 대체수술은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고, 조브 박사는 스포츠 의학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수술의 절차 및 환자 배치 등을 완벽하게 정립하였고, 앨라배마 스포츠 의학 및 정형외과센터의 제임스 앤드류 박사와 내셔널 투수 연합의 탐 하우스 박사와 함께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떠올랐다.

컬란 - 조브 클리닉은 또한 그의 환자들을 위해 재활운동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많은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 사전 준비운동 순서를 마련하였다. 81세가 된 오늘날까지도 이 유능한 의사는 선수들의 수술을 돕거나 상담을 해주는 등의 활약을 하고있는 중이다.

수년간 조브박사의 활동은 수십명에 달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커리어를 구했으며, 그중에는 로저 클레멘스, 존 스몰츠, 마리아노 리베라같은 슈퍼스타들도 포함되어있다 최근까지도 그는 그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토론해왔다.

Q : 어린 시절 야구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이거 완전 첫질문으로 고정시킨 듯..-_-)

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자랐는데 그곳에는 주변에 메이저리그 팀이 없었지만, 아버지와 나는 신문에서 MLB에 대한 기사를 많이 읽었습니다. 저도 운동을 많이 했지만 스타가 될 정도로 잘하지는 못했죠. 고교시절에는 스타팅 라인업에 들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전 야구를 사랑했고, 쭉 그래왔습니다

Q : 언제부터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까?

군대에서요. 전 1943년에 군대에 갔고, 101 항공부대 소속의 326 의학팀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때 겨우 18살이었고, 제 일은 그 부대의 의학장비들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전 그 일을 좋아했고, 군의관들도 제가 일을 괜찮게 한다고 생각했었는지 여기를 나가면 뭘 할건지 물어보더군요. 전 진로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제가 의대를 가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

Q : 아마도 일반적인 군대조직이었을텐데요. 101 항공대는 2차대전에서 가장 크게 활약한 부대였고, 오늘날에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미니시리즈로 잘 알려져있죠.

그 미니시리즈는 506 낙하산 부대에 관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326 부대는 후방에서 지원을 했었고 전방에는 한번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해서 글라이더를 타고 네덜란드로 들어갔었죠. 그리고 바스토뉴(벨기에 바스토뉴 전투, 밴드오브 브라더스의 혹한 전투신이 나오는 곳이다 - 역자 주)에서처럼 수술을 도왔습니다.

전 어린애일 뿐이었지만, 의사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잘 지켜보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전 로마 린다 메디컬 스쿨로 진학했고 UCS에서 레지던트가 되었죠.

Q : 로버트 컬란 박사와의 첫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되었습니까?

그는 레지던트 기간동안 교수님들 중 한분이었습니다. 2년차때 그가 미래에 무엇을 하고싶냐고 묻길래 내가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자, 그가 '그럼 나와 한번 이야기를 해보지'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고 그는 '좋아. 그럼 나와 파트너가 되도록 하지'라고 말했습니다. 20살 차이가 나는 분과 악수를 했을 뿐이지만 전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Q : 당신이 실습을 시작할 무렵, 닥터 컬란은 이미 로스엔젤레스에서 잘 알려진 분이었고, 새로 다저스에 부임한 상태였었습니다. 당신이 처음 스포츠 의학을 접했을 때에 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레지던트였던 기간 - 1960년부터 1964년까지 닥터 컬란은 다저스, 그리고 새로 생긴 엔젤스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매일밤 야구장에 가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를 돕기 위해 야구장으로 가기 시작했죠.

'스포츠 의학'이란건 당시만 해도 소설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처음 밥과 함께 야구장에 들어가자 다른 정형외과의가 나에게 오더니 이러더군요. '스포츠 의학이라구? 야구선수의 다리가 부러진게 변호사 다리가 부러진거랑 뭐가 다른건지 좀 설명해보지 그래?' (웃음) 나는 그당시 답을 알고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떄는 그냥 조용히 있었죠.

Q : 그런데 변호사랑 야구선수랑 다리가 부러진게 뭐가 다른겁니까?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거죠. 변호사는 대강 응급처치만 해주면 가능한 한 빨리 일에 복귀할 수 있지만, 야구선수는 그럴수가 없다는 것. 최소한 필드에서 뛰려면 100%의 재활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장래에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뿐이거든요.

또다른 차이점은 자연적인 문제입니다. 풋볼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처럼 비극적인 부상의 위험성이 존재하죠. 누군가가 당신을 반 죽여놓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 야구에서의 가장 큰 위험은 오랜 기간에 걸친 만성적 부상입니다. 나는 그걸 '혹사'라고 부르죠. 그 만성적 부상은 관절을 부어오르게 하기도 하고, 연골을 닳게 해서 관절염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상들을 인식하고 다루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들이 필요하지요.

Q : 그렇다면 당신이 닥터 컬란과 함께 다저스에서 그 일을 시작할 당시 스포츠의학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하실 수 있습니까?

수술은 거의 없었고, 척골측부인대 경화(흔히 테니스 엘보우라 불린다 - 역자 주)나 타미 존 상황을 발생시킬 수 있는 종류의 손상 등에 관한 지식 또한 매우 부족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MRI나 관절경같은 스포츠 의학에 관련된 기본적인 기술력도 갖고있지 못했지요.

그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많은 미신과 전설을 믿고있었습니다. 부두 의학같은 종류의 것들을 믿는 사람들도 많았죠. 한 예로, 1954년의 다저스 데뷔게임에서 15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칼 스푸너의 경우, 얼마후 어깨를 다치고 회복이 더디게 되자, 잘못된 조언들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한 의사 - 아직도 그의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 가 어깨가 아픈게 몸 어딘가에서 감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Q : '몸 어딘가에서 감염이 있기 떄문' 이라구요?

맞아요. '몸 어딘가로부터의 감염'. 물론 저에게 그 의사가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는지는 묻지 마시고 말입니다. 어쩄든, 그 의사는 그럭저럭 스푸너를 납득시켰고, 가장 의심되는 감염의 원인은 충치같다면서 스푸너의 이빨을 전부 뽑아버렸죠. (ㄷㄷㄷ) 이렇게 해서 팔이 아픈 야구선수가 이빨이 없게 된겁니다. 내 말은, 오늘날에야 이게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1950년대나 그 이전에는 이런 어리석은 생각들 때문에 커리어를 망치는 선수들이 허다했다는거죠.

아마 당신도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본 적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런 이해부족 때문에 사람들이 부상을 정신력의 한계쯤으로 여겼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오늘날에 12살, 15살, 18살의 아이들은 뼈나 연골의 발달수준에 따라 모두 다른 신체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당시엔 그런 것들을 몰랐죠. 투구수와 휴식기간과의 관계같은건 그당시에 알려져있지 않았고, 리틀리그에서 메이저리그까지 그런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Q : 제가 맞게 이해한거라면, 예전에는 최소한 심각한 부상에 걸린다는건 곧 커리어가 끝난다는 뜻이었다는건가요?

맞습니다. 만약 팔꿈치 쪽의 척골측부인대가 아프다면, 꾀병부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나 들었어야 할겁니다. 어떤 심각한 팔부상 - 최소한 야구에서는 심각한 - 이라도 말이죠.

Q : 언제부터 그런 인식들이 바뀌기 시작했나요?

1964년에 다저스 투수인 조니 포드레스가 타자가 친 공에 팔꿈치를 맞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충격으로 왼쪽 윗부분 척골에 뼛조각이 생겼지요. 경미한 수술이었지만, 당시의 생각들은 이랬죠. '오.. 조니의 팔꿈치에 수술자국이 생겼어. 그는 이제 끝났다고.' 그가 그 이후에 오랜기간 잘 던지자 그때부터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Q : 그럼 그시기에 당신은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과 해결책에 대해 알게되었습니까?

그 모든 것은 단순한 관찰에 의해서였습니다. 아마 지금은 평범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예를 들어 한게임에 130개의 공을 던진 선수가 다음 게임에서는 잘 못던진다든가 하는 것들을 기록했죠. 그리고 팔꿈치 뒤쪽의 골극과 뼛조각들이 척골 측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에는 그게 확실한 이야기이지만, 그당시에는 아직 연구단계였으니까 말이죠.

Q : 1966년의 샌디쿠팩스 사건(1961년부터 엄청난 투수가 된 샌디 쿠펙스는 1966년 트리플 크라운과 사이영 위너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이 당신의 이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샌디의 문제는 뼛조각과 관절염으로 팔꿈치 측골척부인대가 손상된 것이었습니다. 점점 심각해졌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매번 등판했고, 우리는 이러다 어떻게 될지조차 몰랐었죠. 샌디는 릴리프 타입의 투수가 아니었기에 결국 그런 문제들이 그를 은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겨우 31살이었죠.

정말, 정말 불운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조금만 더 버텨주었다면, 10년 후 타미존 상황이 발생한 후에 그 부상이 찾아왔다면 우리가 그의 커리어를 구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그에게 10년의 커리어를 더 선물해줄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샌디는 아직 좋은 친구인데 그도 저에게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Q :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최고수준의 선수들은 굉장히 경쟁심이 강하고, 라인업에서 빠지는데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고통이나 신체적 데미지에 대해 말하길 꺼려하는 선수들을 설득하시나요?

보장된 계약이 존재하지 않았던 1960대나 1970년대 초에는 그게 좀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아픈 선수들은 이렇게 생각했겠죠. '무슨일이 있어도 직업을 잃기보다는 여기 남아있겠어.' 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다년계약이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좀더 장기적으로 보게 되었죠.

나는 (부상을 찾아냈다는)진실을 말하는게 과연 좋은 일인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예전에는요. 그가 라인업에 든다면 그의 인생에 더 좋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너무나 자주 들었습니다. 수많은 예들이 있는데, 다저스 선수들은 너무 크게 다친 경우가 아니라면 의사에게 가기보다는 빌 뷸러라는 끔찍한 트레이너에게 말하거나, 자기가 치료를 하곤 했습니다. 확실히 우리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돌아다니면서 부상을 찾아내지는 못했던거죠.

최근에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저스와 다른 팀들은 선수들의 강도나 투수들의 사용법에 대해서 학습효과를 보고 있으니까요. 부상이 발생하기 전에 방지하려는 노력도 많이 늘었고 말입니다.

Q : 당신의 의학적 소견이 감독이나 코치에 의해 묵살된 적은 없었습니까?

1960년대에는 그가 뛰어선 안된다는 제 의견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플레이하도록 재촉하는 코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논쟁들은 결국 다저스 오너인 피터 오말리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가 말하더군요. '우린 당신을 의사로 고용했고, 당신의 결정을 고려하겠습니다.' 그 뒤로 전 그런 문제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Q : '프랭크 조브 박사'라는 이름은 야구역사에서 언제나 '타미 존'이라는 이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시작되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가 몬트리올전에서 부상당했을 때 전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4회초에 2명이 주자로 나가있었죠. 그는 투구를 하면서 통증을 느꼈고, 공은 관중석으로 들어갔죠. 그는 또다시 투구를 시도했지만 공은 역시나 다시 관중석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토미는 필드 밖으로 걸어내려와서 곧장 나를 만너러 왔지요. 그가 나중에 팔을 움직여보니 완벽하게 45도로 움직이더군요. 침팬지라도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겁니다. 인대가 완전히 찢어진거죠. 인대를 재장착하는 장기간의 수술이 없이는 다시는 메이저리그레벨로 돌아올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타미 존 서저리'의 시초가 된것이죠.

Q : 타미가 신체적으로 복구되고 재활하는데 얼마나 걸렸고, 고통 등에도 불구하고 그의 복귀의지는 어떘었나요?

이거 하나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타미는 복귀할 것이라는데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았어요. 내가 그에게 팔꿈치를 복구하는 새로운 수술을 제의했을 때, 그는 곧바로 '합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단한 용기를 보여준 것이죠.

그래도 당신의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재활과정은 신체 뿐 아니라 정신적인 프로세스입니다. 신체와 정신이 모두 필요하지요. 신체적인 면에서는 많은 고통과 트라우마가 수반되고,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신의 관절이나 몸에 대한 신뢰감에 망설임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끔 인대가 찢어졌던 기억이 선수가 자신의 몸을 쉽게 믿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제가 발견한 가장 힘든 도전은 선수들이 너무 빨리 복귀하는걸 막는 것이었습니다. 매번 수술 후 몇개월이 지나면 몸이 나아진다고 느끼는데 만약 그들이 무리한 운동을 강행하게 되면 몇배 더 나쁜 상황을 맞이하게 되죠. 그러나 이 모든 세월들이 지나면 선수들은 어떻게 복귀할지에 대한 우리의 조언을 좀더 신뢰하게 됩니다.

Q : 어쩄든, 현재 선수들은 컬란-조브 클리닉에 대해 최고의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투수들은 최근에 타미 존 서저리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롱런을 하기에 좋도록 팔을 강화시킨다는 평판까지 있지요.

(웃음) 나도 그걸 들었습니다. 그에 대해 좀 이야기하고 싶군요. 우리 의사들은 독립적으로 수술하지 않습니다. 타미 존 서저리는 언제나 완벽한 신체 재활의 일부일 뿐이죠. 우리가 팔꿈치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동안 다리와 몸통 역시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필요한 만큼 휴식기를 가져야 전 부문의 이득이 최대화된다는 생각은 선수생활의 1년을 더 연장시켜줄 수도 있는 것이죠. 맞습니다. 선수들은 그들이 회복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정보다 빨리 운동을 시작하는 선수의 경우에는 대부분 이전만큼의 몸상태로 돌아가지 못하지요.

Q : 이런 상황에 처할 때는 기분이 어떻습니까? 예를 들면 이전의 사이영 폼으로 돌아가지 못한 웨인 갤런드 같은 경우를 접할 때면 말이죠.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약 93%의 환자들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100%는 아니죠. 저도 100%였으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의학은 과학이면서 동시에 예술이다.'라고요.

Q : 재활기간에 코치나 감독들과 밀접한 관계로 일을 합니까?

재활의 막바지 단계가 되기 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팔 문제는 나쁜 투구 메커니즘이나 혹사로 인해 찾아오지만,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혹사때문이지요. 언젠가 거의 다 회복된 - 완벽한 몸상태 직전에 도달하기 직전의 - 재활과정에 코치가 끼어들었습니다. 부상선수들이 필드에서의 경쟁에 뛰어들기에 적합한 좋은 메커니즘과 적응력을 갖고있는지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였죠. 요즘의 코치들은 어떤 경우에라도 그들이 할 일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닥터가 뭘 하라고 지시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지요. 나는 대개 투수의 재활과정에 대해서만 논의를 하고, 언제쯤 게임에 투입할지는 코치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그러면 그들은 대개 제대로 된 답을 가져오지요.

Q : 운나쁘게도, 우리는 젊은 선수들에게 더 팔 부상이 많이 발생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가요?

많은 젊은 코치들이 이렇게 느끼곤 합니다. '만약 약간의 훈련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많은 양의 훈련은 더 좋겠지'라고 말이죠. 그들은 백만달러급의 선수를 만들어주겠다는 시선으로 젊은이들에게 너무 많은 투구를 요구합니다. 뛰어난 고교 투수들은 2~3일 연속으로 풀게임을 소화하곤 하지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젊은 투수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을 그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틀리그에서는 최근에 최대 투구수를 정해놓았고, 이닝수 제한도 신설했습니다. 아주 멋진 생각이지요. 그 소식을 접하고 곧 축하의 편지를 써보냈습니다.

Q : 의사로서, 오늘날 야구계의 스테로이드 이슈를 어떻게 보시나요?

스테로이드에 관한 문제는 아주 많은 면을 지니고 있죠. 의학적인 관점에서부터 알려지지 않은 많은 것들까지 말입니다. 보통 스테로이드가 실제로 사람을 강력하게 만들어준다는 인식이 비교적 깊이 자리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스테로이드는 선수의 히팅이나 피칭능력을 효과적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미 효과적인 히터에게 외야 비거리를 10야드정도 늘려주거나 투수들에게 2~3마일의 패스트볼 구속을 증가시켜줄 수 있는 효과를 줄 수도 있습니다.

스테로이드가 어떠한 종류의 데미지로 종양, 암 등등의 원인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수많은 견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관계없이 전 그것들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야구의 역사를 너무나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겼어요.

Q : 메이저리그 의사들에게 유일무이한 사실은 그들이 종종 팀 소속과 관계없이 협력해서 일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다른 팀의 의사가 당신의 다저스 업무를 도와준다던지, 당신이 그들 팀의 선수들을 돌봐준다던지 말이죠. 이런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전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다른 팀의 의사들을 만나도 되는건지에 대해 몇몇 의문들이 있기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거의 완벽하게 그런 문제들이 사라졌어요. 만일 그런 협력을 하지않고 다른 의사들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자신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겁니다.

야구계 의사협회는 1년에 한번씩 우리의 도전과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만남을 갖습니다. 우리는 환자들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지만, 그들의 발전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죠. '내 환자는 이런 저런 징후가 보이는데, 아직 성공적인 치료법을 찾지 못했어. 누구 좋은 생각 있는 사람이 있나?' 라는 식이에요. 전화로도, 때로는 온라인으로도 이런 논의를 하곤 합니다.

각자 다른 팀 소속이라는 에고가 있기는 해도, 의사들의 모임에서는 우리 환자들의 가장 큰 이익을 위해 그런 것들을 뒤로 밀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들의 건강, 그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죠.

Q : 당신과 함께 했던 수많은 예전 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당신의' 선수라고 느끼나요?

어느정도는요. 제가 야구경기를 볼때면, 우리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은 선수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하고 열심히 운동해서 수술 후 성공적인 복귀를 해냈으니까 말이죠.

탐 캔디오티는 싱글 A 선수였을 때 부터 제 환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당시에 전 과연 수술을 해야할지 의구심을 품었어요. 비교적 이른 시기였거 때문이었죠. 전 그를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정말 메이저리그 유망주냐?' (웃음) 그가 '물론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일을 진행했고,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몇년 후에 성공을 거두었죠. 고맙게도, 탐은 아직도 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에 사인을 해서 보냅니다. '당신의 메이저리그 유망주로부터'라고 써서 말이죠.

당신도 예상하겠지만, 나는 수술로부터 회복한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전근과 어깨를 위해 개발해낸 운동 프로그램에 대해서 더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죠. 그 프로그램은 원래 수술 재활프로그램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모든 종류의 예방법을 포함한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아마 당신이 '회전근 부상'이라는 것을 다른 부상보다 많이 들어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거에요. 정확한 숫자로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부상 예방은 부상 치료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Q : 다른 누구보다도 타미 존과 오렐 허샤이저는 당신의 업적이 수많은 올스타 커리어를 구해낸 것에 대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야 한다고 믿고있더군요. 당신 자신의 예상은 어떻습니까?

그게 의사에게 돌아올 자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비할데 없이 영광스럽겠지요.

Q : 야구계에서, 그리고 야구계 주변에서 40년 이상을 보내셨는데, 당신은 예전보다 좀더 야구팬이 되었나요, 아니면 그대로이거나 덜해지셨나요? (이사람 첫번째와 마지막 질문은 아예 고정시킬 생각인 듯)

물론 좀더 팬에 가까워졌죠. 그렇게 많은 선수들, 특히 나중에 코치와 감독, 단장이 된 선수들과 알고지내게 된 것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클리닉에서 우리는 항상 가족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고, 전 야구계 전체를 저의 가족과 같은 존재로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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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흥미진진한 인터뷰였다. 흔히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음지에서 일하지만, 선수들 - 특히 아픈 선수들 - 에게는 누구보다도 가깝고 누구보다도 필요한 존재가 바로 팀 닥터이다. 예전 박찬호의 기사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던 닥터 조브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은 듯, 인터뷰에서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진짜 의사인 것 같다.

▶◀ 그리고.. 있지도 않은 병균(?) 덕분에 몽창 뽑혀서 주인과 생이별을 해야했던 칼 스푸너의 억울한 이빨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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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Men - The Leader
by Peter Handrinos


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집행위원장인 마빈 밀러와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마빈 밀러가 HOF행의 티켓을 얻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마빈 밀러는 이미 2003년에 HOF 심사대에 오른 바 있으나 50%에도 못미치는 저조한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 입성에 실패했다 - 역자 주)

밀러가 야구계에 들어왔을 당시 - 보수적이고 완고하며 낡았던 세계 - 와 그가 떠난 이후 - 스릴 넘치고 현대적인 세계 - 의 차이. 그것이 바로 마빈 밀러가 야구계에 끼친 영향이다. 어떻게 마빈 밀러가 미국의 국기나 다름없는 스포츠를 바꾸었나 알아보려면 우선 1960년대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아야 한다. 팀의 '오너'들은 이름 그대로 - 소유자로서의 - 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오너들은 그들의 고용인들과의 모든 계약에서 기본 보류조항에 따른 완벽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조항이 의미하는 것은 연봉협상의 의미가 선수들이 버는 돈을 경영진의 변덕에 따라 결정한다는, 아주 일방적인 사안이라는 뜻이었다. 절대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그 누구도 이 룰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뛰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유행이 지난' 낡은 시스템이었다 만일 당신이 '유행을 지난'이라는 말의 정의를 어두운 시대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은 감시견이 아닌 애완견의 역할만을 충실히 이행했던, 소위 '대표자'라는 사람들 덕분에 이런 불함리한 조항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선수들이 용기를 내어 지나치게 낮은 오퍼의 불공정함을 언급이라도 하려고 들면 경영자들은 저급한 보복성 트레이드나 블랙리스트 작성같은 행위로 그들을 응징했고, 덕분에 선수들에게 리더십이란 존재는 개미눈물만큼도 발생할 수가 없었다. 구단주 연합은 그들의 말을 잘 듣는 선수들을 우대했으며 그들에게 많은 돈을 오퍼해줌으로서 재정적으로 보답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마빈 밀러가 선수 협의회에 들어온 1966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진부하고 낡아빠진 제도들에 대한 인식을 배리 본즈가 85마일 패스트볼을 어루만지듯 다루었다. 그는 선수들의 이익이 독립적인 에이전트에 의해 대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선수들이 적절한 사유 없이는 감봉되거나 강등되어서는 안된다고도 주장했다. 물론 선수들은 연금과 최소연봉도 받을 자격이 있으며 안전하지 못한 컨디션 하에서는 뛰지 않을 권리도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밀러는 낡은 보유조항을 퍠지함으로서 야구계를 뒤집어놓았다 그는 모든 프로페셔널 - 변호사, 배관공, 교사 뿐 아니라 야구선수까지도 - 은 자신의 연봉을 협상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논리를 펼쳤다. 아마도 이 논리는 1700년대쯤에나 돼야 혁명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여겨질 것이었다. 야구 조항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가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경제관념에 거의 1세기 가까이 묶여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자 연봉 중재담당관인 피터 세이츠가 밀러의 설득력있는 논의에 동의했고, 'H-E Double Hockey Sticks' - 프로 하키선수의 영혼을 훔치기 위해 악마가 트레이너로 지구에 온다는 내용의 미국 코미디 드라마(역자 주) - 는 무너졌다. 밀러는 야구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팬들은 이러다 야구를 못보는건 아닌가 하고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오너들은 선수들에게 계약의 자유권을 주는 것은 파산을 의미하며 많은 팀들이 야구를 접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커미셔너 보위 쿤은 리그 전체가 망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대한 마빈 밀러는 완벽하게 옳았고, 그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비판들은 완벽하게 틀렸다.

1976년 여름의 자유선언 이후 프리에이전트 계약은 야구계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보수적인 팬들은 양키 다이너스티를 일으킨 레지 잭슨이나 구스 고시지같은 명성높고 영향력있는 선수들을 사랑했고, 새로운 팬들은 로드 커류나 피트 로즈처럼 그들의 새로운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선수들 덕분에 야구계로 유입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리치 지스크나 오스카 갬블이 먹튀로 증명되었을 때 야유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럼 이 새로운 스토리에 의해 팀들은 뒤집어지고 핫 스토브리그가 달구어지게 된 새로운 시대에 야구가 몰락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메이저리그의 연간 관중수는 1976년의 3100만명에서 1993년에 7000만명, 2005년에 7500만명으로 늘어났다. 마빈 밀러의 프리 에이전트 정책은 매년마다 천만명 정도를 불렸을 뿐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수억명의 팬들을 늘려왔다.

그리고 밀러의 오랜 적이던 소수의 오너그룹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결국 선수노조의 승리 속에서 가장 큰 승리를 챙기게 되었다. 관중수가 늘어남에 따라 야구 관련 비지니스 역시 확대되었고, 메이저리그의 총 수입은 1973년의 3억달러에서 2005년 48억달러까지 증가했다. 떨어져나간 팀들은 단 한팀도 없는 가운데 6개의 새로운 팀이 FA시대 이후 추가되었다. 프랜차이즈 가치는 많은 구단들이 수천만달러를 지불하게 되었지만, 그보다 더 큰 판매금액이라는 뜻박의 횡재 덕분에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밀러는 선수들의 대변자였고 그의 직무를 초일류로 해냈다. 무엇보다도 그는 선수들의 권리를 되찾았다. 그중 가장 현저한 결과는 슈퍼스타들 - 6년간(약 1000게임)을 풀로 뛴 - 이 공개된 시장에서 그들의 연봉을 결정할 권리를 얻었다는 사실. 그들의 권리를 있어야 할 자리에 돌려놓 밀러의 선수들은 합당한 돈 역시 되찾았다.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1976년의 연평균 51,500달러에서 뉴 밀레니엄에는 260만달러까지 상승했다. 오너의 영역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독점적 권리에 스크래치정도는 내준 셈이다.

마빈 밀러의 자유계약이 어떻게 모든 것을 바꾸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숫자들 이면의 것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선수들의 편에 서는 것은 더 큰 돈 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했다. 그는 경쟁의 논리를 옹호했고, 근본적으로 야구계를 재정비함과 동시에 발전시켰다. 밀러의 새로운 룰 하에서, 팀 오너들은 더이상 3류 마케팅, 인맥으로 꾸며진 프런트 오피스, 인종차별 등의 비합리적인 일들이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보류조항 하에서의 경제학' 의 품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급등한 선수 연봉은 야구계 인사들에게 실질적인 비지니스맨이 되기를 강요했으며, 이들은 인종차별 없는 인사정책, 국제적 리쿠르팅, 좀더 현명한 프런트 오피스 계약과 업그레이드된 마이너리그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팬들을 향해 손을 뻗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야구계의 비지니스맨들은 점점 더 대중적이고, 팬 친화적인 혁신적 정책에 몰두하게 되었다. 많은 돈을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에게 투자함과 동시에 그들은 인터리그의 도입, 와일드 카드 플레이오프 제도, 빛나는 새로운 구장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오랜 프로스포츠 리그는 아직도 미국의 인기스포츠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내가 1980년대 초에 성장하던 시절, 마빈 밀러는 가끔 '야구계에서 가장 미움받는 인물'로 알려지곤 했다. 적어도 언론, 그리고 경영진 내의 강력한 적대세력들에게는 말이다. 오늘날의 그는 88세의 은퇴한 노장이지만, 아직도 날카롭고 재치가 넘치는 인물이다. 맨하탄의 아파트 입구에서 나를 반겨주었을 때, 그는 야구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의 나에게 나누어주었다


Q : 스포츠 노동운동에 관한 최신 뉴스는 내셔널 하키 리그 선수노조의 몰락인데요, 아시다시피 그들은 최근에 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결국 전체 지출 제한, 팀 지출 제한, 연봉 상한선 등이 포함된 오너들의 제안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선수 계약액수에 대한 24%의 페이컷도 포함해서 말이죠.

Q : 물론 이미 존재하는 계약도 말입니다. 그게 합법적인지조차 모르겠군요.

(웃음) 내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Q : 하지만 결국 NHL 선수들이 그 딜에 합의함으로서, 비슷한 종류의 단체교섭 계약을 맺고있는 NFL이나 NBA에 많은 적든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죠. 제가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첫번째는 그게 풋볼이던 농구던 하키던간에 일단 프로스포츠 노조라면 팬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 합리적인 단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들은 나쁜 의미의 '회사 노조'일 뿐이에요. 팀 오너들에게 소유되고 지배되는 그런 집단 말입니다.. 풋볼, 농구, 하키에서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노조가 생길만한 기간이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한들 그다지 놀라운 사건은 아니죠.

Q : 음.. NFL의 기니 업쇼와 NBA의 빌리 헌터도 아마추어는 아닙니다만..

조합장으로서야 물론 그렇죠. 하지만 그들은 그 어떤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조언을 구하려 하지 않아요. 프로 선수들이 만일 기존의 선수를 리더로 삼고 모든 역할을 맡긴다면 정말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겁니다.

Q :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NFL 선수들은 이미 1981년 이후 2번 파업을 겪었고, NBA 역시 1번 파업한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독립적인 리더쉽이라는 점에서 MLB 선수노조를 다른 선수노조와 구별시켜주는 점은 무엇입니까?

아, 난 그게 내 업적이라고 이야기하려는게 아닙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 어떤 다른 스포츠 노조도 '우리 조합의 약점은 노사관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선수출신의 비조합원을 리더로 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정말 간단한 문제에요. 그들은 항상 선수출신이 노조를 맡아왔을때 좀더 편안하게 느꼈었죠. 야구계에서도 제 전임자인 캐넌 판사(로버트 캐넌, 구단주들과 사이가 좋았고 한때 차기 커미셔너로 고려되기까지 했었다 - 역자 주)는 여러해동안 선수들에게 친숙한 이미지였습니다. 일단 내부출신으로 조합의 기초가 다져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다른 어느곳으로도 갈 수가 없죠. 하키도 그렇고 다른 모든 스포츠나 비지니스도 그렇습니다.

Q : 그렇다면 당신은 MLB 노조가 좀더 독립적인 리더쉽에 융통성이 있도록 만들어준 어떠한 문화나 배경같은 것이 야구선수들에게는 존재한다고 말하려는 것입니까? 풋볼 선수들이나 다른 선수들은 야구선수들이 1) 노조의 경영진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2) 당신이나 (현재 집행위원장인)도널드 페어같은 비선수 출신의 외부인사를 리더로 고용함으로서 성공적인 노조활동을 하고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같습니다만..

내가 겪은 일 중 한가지는 야구가 기존에 인간관계가 존재하는 스포츠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이너리그 시절에 같이 지내면서 함께 운동하고, 함께 살고, 함께 고생했었습니다. 마이너리그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강한 일체감을 가지고 있었죠. 예를 들면 풋볼선수들은 각자 독립된 대학출신에 캠퍼스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농구 역시 대부분 대학출신이고 거의 서로에 대해서 라이벌이라는 것 빼고는 아는게 별로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야구선수들이 다른 종목 선수들에 비해 두드러진 점은 그들이 서로의 의견에 귀기울일 줄 안다는 것 같군요.

Q : 그렇다면 NHL 딜이 2006년에 있을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노사 합의조약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합니까? (이 인터뷰는 2005년에 한 것이고, 06년의 MLB 노사조약은 서로에게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 역자 주)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약간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죠.

나는 하키리그에서 일어난 일이 야구의 협약 상황을 종전보다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이지만, 만일 한두시즌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선수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을 더 좋게 생각하는 오너들은 항상 존재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에 대한 증거로 하키리그의 협상결과를 들고 나오겠죠. 물론 야구계가 매우 인기있는 스포츠의 지위에 올라있기에 이런 일이 현실화되기는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Q : 어떤 면에서는 현재 야구계의 관중 및 수익 붐이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현재 시스템 하에서 야구계가 매우 부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설픈 수정은 필요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또한 언젠가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겠죠. '이봐, 만약 노조가 없어진다면 얼마나 더 벌어들일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봐'

맞아요. 그리고 강경책에 따른 손실과 고통도 계속 고려되어야 합니다. 강경책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너쉽과 경영진에는 '이제까지 수년간 노조의 활동을 본 결과, 그들은 하키노조와는 달라. 쉽게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할 사람들이 더 많겠죠.

Q : MLB의 수익은 30년전에 비해서 최소 15배 이상 성장했고, 선수들의 연봉도 5만달러 이하에서 오늘날에는 평균 2.3mil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앞으로 선수들이 좀더 강력하게 경영진의 롤백 정책(임금인하 정책)에 저항할만한 명분을 줄 것 같은데요.

동의합니다. 아마도 도널드 페어와 MLBPA가 다루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FA로서 메이저리그를 뛰어본 경험이 없는 선수들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죠.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건 이제까지 비교할 대상도 없었고, 해결할 방법도 없었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야기한데는 노조 또한 책임이 있지요.

Q : MLB의 노동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불만스러운 점이 좀 있는데,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조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야구는 실제 세계와 동떨어진 것이고, 스포츠면은 경제면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메이저리그 노사관계가 결국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의 돈싸움이라는 생각이 숨어있습니다 노조의 자유계약을 위한 투쟁은 관중과 수익, 메이저리그의 국제적 확대와 새로운 구장 등등을 이뤄냈고, 이런 현상은 근본적으로 노조가 각 구단간의 오프시즌 머니게임의 무대를 열기 위해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며 싸웠던 덕분에 일어난 것들입니다만,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있지요.

팬들을 한번 생각해보면, 그들은 아직 독자적인 정보 소스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다들 미디어, 신문, 잡지, 라디오, TV 등등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있는데, 전 그런 전통적인 미디어들이 생산해내는 정보가 정말 빈약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팬들에게는 메이저리그의 노동운동과, 그에 따른 발전을 느낄만한 곳조차 없는게 현실이죠. 예를 들면, 전형적인 팬들의 자세는 바로 이겁니다. ‘저주받을 두 가문이여!’ (로미오와 줄리엣 中)  만약 이런 사람들(또는 미디어)이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되는거겠죠.

'독일인들과 이 사람들이 이 전쟁을 일으켰으니 둘 다 잘못이다.'
'오.. 하지만 독일인들이 쳐들어온건데'
'맞아. 하지만 알다시피 그들 입장에선 우리가 쳐들어왔다고 말할 수 있어.' (웃음)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태도를 1981년 논쟁(1981년의 메이저리그 노사 협상 - 역자 주)에서 경험했었습니다. 그당시 계약이란 것은 오직 오너들에게만 열려있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때당시의 태도는 ‘저주받을 두 가문' 일 뿐이었습니다. 전 한 기자에게 물었죠. '요즘 기자들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야구계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요.'

그게 뭘까요?

Q : 이른바 '뉴스의 천국' 으로 불리는 것들이군요.

언젠가.. 아마 69년의 협상때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스프링 트레이닝이 연기되었었죠 그동안 갑자기 적대적으로 변한 기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했죠.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건가요?' 그가 말하길.. '지금은 한겨울 아닙니까. 지금 난 노조 덕분에 플로리다 대신 시카고에 와있다구요.'

Q : 그들은 협의가 갖는 장점조차 듣고싶어하지 않았군요.

음.. 그래서 제가 젋었을때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전 보류조항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본 일이 없었어요. 그게 뭔지도 몰랐죠. 예를 들면 야구계가 행하고 있던 인종차별의 부당성에 대해 알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말입니다.

Q : 연봉인상을 억제하려는 오너들의 모임이 향후 현실적인 위험으로 발전할 것 같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Q : 오리지널 공모/협박 사건이 있은지 20년이 지난 다음에도 말인가요?

예. 제가 피터 세이츠의 결정(1976년에 보류조항을 철폐하기로 한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 대해 유일하게 걱정했던 것, 처음부터 우려했던 것은 전체적인 새로운 동의안과 새 시스템을 협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제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것은 '우리가 이겼다. 이제 자유로운 시장을 갖게 되었고, 선수들은 자유경쟁 체제에서 가치를 협상할 수 있게 되었어' 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전 노조와 생산업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만일 완벽한 결속이 되지 않는다면 저쪽이 당했던 일들이 우리에게 돌아오기 때문이죠.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서 오너나 집행부들들은 전체적인 공모를 해왔기에 몇몇 오너조차 - 그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빌 비크같은 - 그 벽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재능있는 선수를 사장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그 룰을 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공모된 모델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전문가들이었고, 이런 사실들 때문에 저는 조심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아직 숲을 빠져나온게 아니었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직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언제나 우리의 시스템을 파괴할 방법들은 존재해왔고, 오늘날에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일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냐고요? 답은 'Yes' 입니다. 전 언제든 그런 일들이 재발할 수 있는, 우리는 아직 그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루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당신은 야구계의 스테로이드 이슈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편이었고, 노조의 금지약물 제도를 좀더 강화하는 기본 합의문에 대해 비판적인 편이었습니다 약물문제에 관한 논란이 향후에 노사관계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합의를 시작하는 것은 불화를 키우는 방법이고, 전체적인 이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합의안은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는 선수들이 사용할지도 모르는 선수들에게 화를 내도록 만들어져있어요

Q : 하지만 대중들과의 관계에 얽힌 문제에는 효과와는 있지 않을까요?

음.. 먼저 해야 할 일은 '언론이 계속 압력을 가하는 한 사람들은 진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겁니다 노조는 대중의 약물에 관한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언론이 모든 잘못을 노조에 돌리는 동안에는 말이죠.

나는 항상 이런 자세를 견지해왔습니다. 대중들이 내 의견에 동조하게 만들고 싶지만,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냥 이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가끔 대중들은 아주 단순한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대중들이 명백히 틀렸을 수도 있는거지요.

내 커리어에서 한번 대중들의 인식에 대해 우려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아직 철강노조 소속으로 일할 떄였죠. 철강산업에서 작업중단은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에 다른 산업에 비할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백악관까지 갔고, 반(反) 노동 입법에 관한 여론이 생기기까지 했지요. 그때 전 대중들의 태도에 대해 걱정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야구계에서 이런 일(파업)이 벌어지고, 우리가 언론으로부터 시작된 반 노조의 여론을 겪었을 때, 전 오히려 선수들에게 충성심을 느꼈습니다. 전 여론을 돌리고 싶었지만, 대중을 바꿀만한 힘도 없었기에 그냥 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죠.

거기에 더해서, 전 소위 스테로이드라 불리는 MLB 선수들의 능력향상물질에 관해서는 과학적인 면에서 볼 때 아주 미미한 증거조차 없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Q :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육상선수나 역도선수, 수영선수들과 다르긴 하죠.

전 대중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도 스테로이드가 메이저리그의 실력을 높여주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현재 약물복용자를 확실히 집어낼만한 과학적인 테스트조차 없지 않냐구요. 당신들이 알고있는건 수많은 작가들, 수많은 연방의원들이 잇따라 언급하고 있는 말들. '이건 일반적인 선수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스캔들입니다. 능력을 끌어올리는 뭔가를 쓴거라구요' 라는 말들일 뿐이죠.

Q : 하지만 당신도 켄 케미니티나 호세 칸세코, 제이슨 지암비같은 선수들의 커리어를 보아왔고, 경험으로서 스테로이드가 정말 실존하고 선수들의 실력이나 건강에 파괴적인 효과를 끼친다는 결론을 낼 수 있지 않나요?

아, 다시 말하지만 전 당신이 방금 말한 사실에 근거를 들만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갖고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 그 사람들의 진의가 선수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지금과는 다르게, 그들에게 주의를 주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겁니다. 법을 만드는 의회라면 법을 지키도록 유도해야죠.

Q :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선수들의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금주령이 내렸을 때 어떤식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하던가요? 의회는 아마 리큐르(칵테일이나 요리 등에 쓰이는 과일주 - 역자 주)가 사람들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말하면서 금주법을 통과시켰겠죠 그래서, 그들이 금주법을 지키도록 만들었습니까?

Q :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았죠.

(웃음) 그래요, 누가 사람들에게 그 법을 지키게 만들었죠?

Q : 경찰이요.(웃음)

정의의 수호자, FBI였죠. 어떤 법을 집행하던지 우선 증거를 모아야 하지만, 역시 헌법에도 신경을 써야겠죠. 그리고 소위 '올림픽 테스트'라는건 정부에서 행하는 테스트가 아닙니다.

아무도 의회가 발언기회를 억제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있어요. 누구도 그들에게 '당신들은 야구계에서 시행하는 테스트가 충분히 엄격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게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있어' 라고 말하지 않고 있죠. 사실 전 그들에게 '충분한 테스트'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현재 시스템 하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오프시즌에 한번 이상 테스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Q : 연방법과 헌법 보장에 관한 당신의 지적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도널드 페어는 아마 다른것 보다도 야구의 이미지 때문에 어느정도의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는지도 모르죠.

그건 점점 더 궁지에 몰리는 방법일 뿐입니다. 스테로이드 검사제도를 바꾸려는 동의안 협상을 시작하는 것은 그 첫번째 실수가 되겠죠.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 우리는 일단 계약을 시작했고, 이제 사람들이 좀 누그러지겠지' 라고 말이죠. (웃음) '그래! 우리는 새로운 테스트를 협상할거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의회는 불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협상합시다. 우리는 들을 자세가 되어있습니다 좀더 많은 것을 원해요'라고 말했죠. 그리고 이 문제는 아직도 미해결중인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Q : 틀림없이 언젠가는 들어볼 날이 오겠죠. 칸세코, 맥과이어, 등등이 줄줄이 불려나와 대통령 탄핵 이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계속 궁지에 몰리면서 그들이 점점 더 대담해지리란건 천재가 아니라도 알 수 있지요.

Q : 당신에게 수사학적인 배팅연습의 기회를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Q : 노사관계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마다 제가 종종 듣는 몇마디 말들이 있는데요, 예를 들면 '노조는 언제나 새로운 뭔가를 원한다' 라는 것이죠.

물론 노조는 오너가 연방법과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기를 원합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열악한 근무조건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들도 있지요. 최소연봉과 연금, 건강문제는 시대의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되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각각의 협상들을 통해서 개선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요. 그런 말들에 대해선 별로 놀랍지 않군요.

Q : '노조는 좀더 많은 관료주의, 룰, 법규, 구단에 대한 간섭을 원하고 있다.'

노사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비평가들은 바로 조합의 신뢰가 관료주의나 템퍼링 룰 같은걸 없앴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Q : '마빈 밀러, 도널드 페어 등등이 순진한 선수들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있다'

(웃음)

Q : '순진한 병사들은 그들에게 최선의 이득이 되는 방법과는 반대로 가고있다.'

'최선의 이득이 되는 반대방향' 이라고요? (웃음) 선수들은 오너들의 소유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은 6000달러의 최소연벙과 19000달러의 평균연봉, 그리고 처참한 수준의 연금을 받고있었죠. (웃음) 그들은 자신이 뛸 곳 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었구요.

Q : '노조가 선수들의 충성심을 망쳐놓았다.'

대부분의 기자들, 대부분의 팬들이 타임지의 렌 코페트에 의해 포괄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프리 에이전트 선수들이 엄청난 속도로 팀을 옮기고 있다는 가설을 다룬 연구를 진행하면서 FA제도가 있기 전의 10년과 FA제도가 생긴 뒤 10년을 비교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수들이 팀을 옮기는 빈도수가 오너들이 전권을 쥐고 선수들의 이동을 맡았을 때가 훨씬 더 빈번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습니다.

Q : '야구에서 최고의 미덕인 오너와 선수간의 파트너쉽은 존재한다.'

(웃음) 음..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언젠가는 제너럴 모터스의 고용인들이 GM의 50%를 소유하고 주주들은 회사의 운영을 포기하게 될 날이 온다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좀 웃기는 이야기이죠.

Q : 당신은 집행위원장 시절에 수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냥 웃어넘기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당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당신을 향했던 그 증오들이 아직도 느껴지시나요?

아뇨. 무엇보다도, 제가 현역으로 뛰고 야구계의 모든 부조리한 일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 때조차 전 적대적인 팬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요.

Q :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저도 압니다. 기억나네요. (웃음) 원래대로라면 개막전이 열렸어야 할 1972년 4월에 신시네티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정말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도시군' 이라고 생각했었죠. 뒷구멍으로 대충 알고있었지만요. 전 신시네티에서 별로 멀지 않은 오하이오 주 옥스포드의 마이애미 대학에 다녔기 때문에 그곳 신문도, 신시네티 지역 신문기자들도, 신시네티 레즈의 오너와 단장도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지금 이 도시에서 하려는 일이 파업 첫날을 맞는 것이란말야?'

그당시는 제가 거의 매일 TV에 나오고, 신문에 사진이 실리고, 여러곳에 얼굴이 팔리던,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던 시기였죠. 그러던 때에 야구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넘쳐나던 거리를 걸어갔죠. 아시다시피 제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냐고 묻는겁니다. 그런 날(파업 첫날)이었음에도 정말 친근하게 말이죠.

뉴욕에서는 뭐.. 별로 놀랍지 않았습니다. (웃음) 트럭 운전사들이 나를 알아보고 '지옥에나 가버려' 라고 하더군요.

오히려 적대적인 사람들은 민영 신문이나 그 신문의 기자들이었습니다.. 그 오너와 단장들도, 레오 듀러셔나 가끔은 기니 오트리 등등의 감독들도 말이죠. 하지만 팬들은 아니었습니다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중에 그런 적대적인 반응 비슷한게 기억나는적이 딱 한번 있군요. 화이트삭스와 플로리다에 있을 때였습니다. 외야 잔디에서 회의를 하고있었는데 90분을 할 예정이었죠. 그런데 회의가 너무 길어졌는지 반대쪽 펜스에 있던 팬들이 더이상 참지 못하더군요. '이리 와서 게임이나 하라구!!'

Q : 아마 이쯤 되면 노조의 성공이 정말 대단했고 오랜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사도 많이 받으실 것 같습니다만.

제가 은퇴한지 20년이 지났습니다. 매달 어림집아 15~16번의 사인요청을 받곤 하죠. 야구공, 셔츠, 내 책의 재판본, '당신은 명예의 전당에 가야한다'라고 쓰여진 편지 등등.. 수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매일, 매주 계속되고 있죠. (웃음) 가끔 다른 편지는 안받고 팬들 편지만 받죠.

Q : 제 생각에, 명예의 전당행이 언젠가는 올 것 같은데요. 언젠지 알 수는 없지만

음.. 선수 협의회의 기니 오르자가 나에게 며칠전에 간단한 인용구가 쓰인 이메일을 보내왔더군요 거기엔 '마빈 밀러는 야구계를 망치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라는 말과 함께 몇줄이 더 쓰여있었습니다. 기니 오르자가 이러더군요. '이 말을 누가 했을 것 같아요?'

Q : 스타인브레너

(웃음) 나도 스타인브레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아니면 보스턴 오너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사람들은 내가 (2003년에) HOF에 뽑히지 못했을 때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었죠. 하지만 둘 다 아니었습니다 바로 (오랜 적이었던) 버지 바바시(전 다저스 단장이며 현재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인 빌 바바시의 아버지 - 역자 주)였어요!!

이 사실로 경영진, 또는 선수출신으로 경영진이 된 사람들, 전직 노조원, 집행부, 미디어에 관련된 사람들 조차 나에게 투표해주었는지도 모른다는걸 알게 되었죠. 대부분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숫자(득표수)로 봐서는 - 명예의 전당 커트라인인 - 75%를 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불가능하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거의 힘들어보입니다.

Q : 음.. 당신이 틀렸기를 빌겠습니다.

(웃음) 오케이.

Q :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시간을 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야구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인물이자 강력한 메이저리그 노조의 아버지, 마빈 밀러의 인터뷰였다. 그는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인 오너들의 횡포에서 수많은 선수들을 구해내고 현재의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초석을 다졌으며,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나 카를로스 벨트란이 얻은 매머드급 계약은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이득을 챙기는 일에는 무관심하던, 그래서 그와 함께했던 집행위원들이 제살길을 찾아나설 정도였던 청렴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말투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노조의 대변자로서의 그는 그 나이에도 재치를 잃지 않은 것 같다. 올해 또다시 기회가 주어졌던 HOF행 티켓 역시 놓치고 말았지만, 후대에는 그 누구보다도 야구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역사에 남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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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Men - The Man in Blue

by Peter Handrinos


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시애틀 매리너스의 감독 마이크 하그로브의 아내, 샤론 하그로브와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야구팀은 가족과도 같으며 신뢰로 뭉쳐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결국 야구선수들은 1년에 8개월씩은 매일 그들의 팀메이트와 여행하고, 먹고, 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경험을, 목표를, 운명을 공유하게 된다. 그에 따른 시간의 양과 질을 통해 선수들은 프로페셔널한 면과 개인적인 면에서 모두 강력한 결속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야구팀이 가족같이 보인다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지만, 그들이 가족은 아니다. 야구선수를 진심으로 대하고, 진정 가까운 사람은 바로 그의 진짜 가족들이다. 돈 잘 벌고 공적인 커리어를 떠나 선수들은 아내와 아이들, 친척들에게 돌아가고, 그곳에서 따뜻한 유대관계가 존재하는 삶을 맛보게 된다. 아무리 그의 직업을 즐기는 선수라 할지라도 일단 야구장을 떠난 뒤에는 그들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기 마련이다.

가족들이야말로 야구의 진정한 홈팀이며, 샤론 하그로브는 아마도 그들의 다이나믹한 생활을 가장 잘 알고있는 전문가일 것이다. 그녀가 고교시절의 남자친구 - 마이크 하그로브 - 와 1970년에 결혼한 뒤, 그녀는 곧 수십년간 겪을 긴 여행에 올라야 했다. 그녀의 남편이 마이너리그 유망주에서 메이저리그 올스타가 되고, 결국 존경받는 빅리그 감독 - 처음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그리고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최근에는 시애틀 매리너스까지 - 이 되는 동안 그녀는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1972년부터 현재까지, 그녀는 수십번의 이사를 했고, 수백번의 여행을, 수천번의 예측불가능하고 특수한 라이프 스타일을 요구하는 생활을 해왔다.

이런 세월동안 샤론 하그로브는 동료들의 아내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연설을 의뢰받고, 신문에 칼럼을 게재하고, 라디오 쇼를 진행하고, 잘 팔리는 자서전 '가정의 안전'을 출간했다. 최근에 그녀는 야구의 인생과 결혼한 사람의 인생이 맞닥뜨리는 방법에 대해 논의해오고 있다.

Q: 당신은 고향인 시골에서 야구팬으로 자라지는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 텍사스의 페리빌에는 야구팬이 없었어요. 그때는 로열스와 레인저스가 캔자스시티나 알링턴으로 오기 전인 1950, 1960년대였으니까요. 기껏해야 늦은 밤에 라디오에서 카디널스 소식을 듣는게 고작이었죠. 우리 고등학교에도 야구부가 없었고, 야구란건 본적도 없었죠. 전 야구란걸 아예 몰랐기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Q: 언제부터 변화가 일기 시작했나요?

아, 이미 아시겠지만, 전 대학야구와 세미프로에서 뛴 대단한 선수와 결혼을 했지요. 그리고 나서 야구장에 가긴 했어도 도데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그떄부터 계속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마이크가 스코어북을 가져와서 저에게 가르쳐주더군요. 그게 제가 야구의 룰을 배우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을거에요.

어쨌든 저는 저만의 스코어 기록법을 갖게 되었죠. 어느날 마이크가 스코어카드를 보다가 'BT'라고 씌인걸 보고 한마디 하더군요. '번트를 댄게 아닌데..' 라고 말이죠. 그래서 전 이렇게 말해줬죠. '알고있어요. 그건 번트가 아니라 '바쁘게 항의하는 것 - Busy Talkin' 이라구요. ' 우리는 아직도 가끔 예전의 스코어 카드를 넘겨보면서 웃곤 해요.

Q: 제 생각엔 당신이 운이 좋은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야구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내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였고 (재미를)우연히 발견한 것 뿐이에요. 아내들은 아마 모두 함께 앉아있을거고,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겠죠. '너무 느려, 지루해 죽겠네' 그럼 제가 어떻게 그사람들을 야구로 끌어들이는줄 아세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죠. '저기 유격수 보여? 그의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글쎄 저사람이 밤새도록 비행기를 타고 반대쪽 해안으로 날아왔다더라구' 여자들은 보통 선수들의 인간적인 면이나 일상에 오히려 더 관심을 갖곤 해요.

Q: 결혼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당신 남편의 미래가 야구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라도 알고 있었나요?

아뇨. 전혀 몰랐습니다. 우린 연인사이가 되기 전인 페리튼의 중학교 시절부터 서로를 알아왔어요. 나는 마이크가 야구를 꽤 잘한다는 사실은 알고있었지만, 자세한건 몰랐어요. 그래서 솔직히 그가 첫번째로 드래프트되었을 때는 놀라면서도 불안했었죠.

Q: 제 질문은 당신이 예를 들면 마이너리그에서 거쳐야 하는 혹독한 시간들 같은 사실에 대해 알고있었냐는 것이죠.

전혀요. 우리는 어렸고, 사실 제가 아는거라곤 마이크가 좋은 사람이며 야구를 좋아한단 것 뿐이었어요.

우리는 돈은 - 한달에 500달러같은 것들 -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처음 받은 금액은 우리가 이제껏 상상하지도 못한 액수였어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우리에겐 아이도 없었고, 페리튼 밖에는 안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죠. 아마 그당시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건 정말 대단한걸. 정말 흥미롭고 모험적인 일이 될거야.' 라고 말이죠. 마이너리그로 가던 첫번째 여행이 기억나네요. 그때 우리는 세인트루이스에 들려서 야간경기를 보았죠. 1972년이었는데 지금도 그때 앉아있던 마이크가 생각나요. 꿈꾸는 듯한 눈으로 계속 필드만 보고 있었죠. 제가 '뭘 생각해?' 라고 묻자 이렇게 말했어요. '샤론, 나는 10년이 걸리더라도 빅리그에 서볼 가치가 있을 것 같아.'

Q: 와우~

그게 참 멋있었죠.

Q: 그렇다면 남편께서 실제로 꿈을 실현시키고 메이저리그로 향한 길을 걸을것이라는데 대해 낙관적이었던 건가요?

요즘에야 저도 드래프트된 선수들의 대부분이 ML에서 뛰어보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죠. 하지만 그때는 그런건 몰랐어요. 아마 지금 알고있는 사실들을 그때 알았다면, 그렇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는 힘들었겠죠.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아요. '바보같은 짓이야. 우린 교육 학위도 가지고 있잖아. 제발 차분하게 생각해본 뒤에 평범한 삶을 살자고'라고 말이죠.

우린 정말 정말 운이 좋았어요. 마이크는 몇시즌 후에 빅리그에 올라갔고, 선수로 뛰는동안 마이너에는 내려가지 않았죠. 몇년동안이나 마이너에서 생활하거나, 메이저와 AAA 사이를 요요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건 겪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우리가 그런 상황에 놓였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잘 모르겠어요.

Q: 당신같은 젊은 아내들에게 마이너리그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건 어땠습니까?

정말 새로운 세계였죠. 뉴욕 북쪽에 있는 싱글A에서 우리는 어떤 여자분의 집에 딸린 침실에서 지냈어요. 그녀는 이횬녀였기에 수입이 필요했었죠. 제가 기억하기로 1주일에 15달러를 냈던 것 같네요. 싱크대와 티비, 그리고 의자 1개가 있었고 조그마한 샤워기가 달려있었죠. 전 그녀가 청소를 하거나 저녁을 준비하는걸 돕고 물건들을 빌려쓰곤 했어요.

우린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1주일에 겨우 한번 집에 전화를 했는데, 그게 할머니가 심장수술을 받을 때였죠.

전체적으로 적응이 필요했어요. 그냥 야채를 사는 것만 해도 적응이 필요했죠. 제가 페리튼에서 자랄때는 그냥 가게에 가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사기만 하면 되었죠. 하지만 제네바에서는 갑자기 '체크 현금카드'라는걸 달라고 하는거에요. 가게에 처음 가던날 저는 야채조차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 야구장으로 달려가서 울먹이며 이렇게 외쳤죠. '마이크, 그들이 야채도 못사게 해요..ㅠㅠ'

하지만 모든게 안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텍사스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뉴욕 북부라는 곳은 완벽하게 새로운 곳이었어요. 무척 아름다웠죠. 우리는 왓킨스 글렌을 여행하기도 하고 피크닉을 가기도 했어요.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고, 야구장 주변에서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볼 소 있었죠.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나 젊은 커플들은 돈이 많지 않았던, 그러나 서로가 있어주었던 시절들을 기억할 수 있을 거에요. 돈에 쪼들렸을 지라도 우리는 행복했었죠.

Q: 당신 남편이 경기장에서 야유를 받는 기분좋지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오.. 전 팬이 되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언젠가 한 팬이 '하그로브, 도시락통이나 들고 우리처럼 일하러 가라고!' 라고 외치던게 기억나는군요. 저는 그를 향해서 XXXXXX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 마이크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샤론, 팬에게 뭐라고 소리친게 당신이야?' 제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선 안돼. 사람들이 당신이 누군지 알아선 안된다구'

그 후에, 전 남편에 대해 말하는 소리들이나 야유를 듣고도 분을 삭일 수 있게 되었죠. 마이크가 옳았어요. 그들에게 받아쳐봤자 좋을게 없지요.

Q: 하그로브씨는 메이저리그에 승격된 1974년에 신인왕에 올랐는데, 그의 성공이 당신의 성공처럼 느꺄졌나요?

아시다시피, 그건 쉽지 않았어요. 전 아내들중 누구도 알지 못했고, 이웃들도 잘 몰랐어요. 그리고 교회와 야구장, 그리고 아파트 뒷편밖에 갈줄 모랐었죠. 그무렵 전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뭔가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했었습니다. 생활을 열심히 하고있다고 생각했었죠. 마이크는 성공했지만, 제 인생은 상상했던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극복해야 할 문제였고, 결국 해냈지만 말이죠.

Q: 어떻게 그걸 극복하셨습니까? 예를 들어 주말에 남편이 원정경기에 가있는 경우에는요?

그가 원정을 시작했을 때, 전 무엇보다도 그가 제가 가보지 못한 메이저리그 도시들을 여행할 수 있다는데 질투가 났어요. 물론 그건 그냥 또다른 적응일 뿐이었지만요.

마이크와 저는 원정기간 동안에도 대화를 나누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홈에 있을 때는 되도록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했죠. 누군가가 우리동네로 온다면 그분에게도 시간을 할애하려고 했었구요. 임신한 후에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썼어요. 아기가 제가 겪은 상실감을 느끼게 하고싶지는 않았거든요. '오늘은 아무일도 없었으니 참 좋은 날이구나'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았죠.

지금도 전 같은일을 하곤 해요. 결혼한 딸 3명과, 다 자란 아들, 그리고 고교생 딸과 4명의 손자들이 있지만, 남편과 같이 있지 않을때는 남편의 CNN이 되어 '하그로브 가족 뉴스' 를 전하곤 하지요. 다행스럽게도 그가 곁에 없을때라도 그는 가족과 같이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해요.

Q: 당신의 경우 말고, 다른 야구선수의 결혼은 어떻게 보셨나요? 그 커플들은 어떻게 스트레스와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서로 친밀하게 지낼 방법을 찾아내던가요?

마이크가 레인저스에 입단한 첫해, 많은 베테랑들 - 짐 프레고시, 짐 스펜서, 게일로드 페리 - 이 있었어요. 그들은 모두 가정적이고 행복한 사람들로 보였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제가 보고싶었던 것이었어요. 아직도 그렇게, 좋은 선수들이 좋은 가정과 친구들을 이끌어간다고 느끼고 있죠.

그런 것들을 이루는데 있어서 다들 다른 경험들을 갖고있어요. 유연성이 그래서 중요한 법이고 제가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점이랍니다. 유연성이란건 바로 홈과 원정의 차이점에 잘 적응하는 능력이 되겠죠. 트레이드나 승격, 강등, 사인으로 인해 타 도시로 이동하는 것에 잘 적응해야 하는 능력, 또는 좋은 시절이 슬럼프로 바뀌는데 잘 적응하는 능력이 되겠죠.

Q: 아내는 남편의 커리어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적응이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당신은 남편이 하는 야구에 열중하려고 노력했나요, 아니면 반대로 멀어지려고 노력했나요?

나는 언제나 남편과 야구이야기를 하는걸 좋아했어요. 하지만 말해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룰은 있었죠. 바로 운전할 때 까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우리는 '집에 있는' 가족이에요. 레인저스도, 인디언스도, 매리너스도 아닌 그저 우리일 뿐이죠.

제가 말할 수 있는 우리 결혼생활의 축복은 마이크가 필드 밖에서는 야구에만 매달리지 않았다는 거에요. 게임이 끝난 뒤에 그의 사무실을 둘러볼 수는 있었죠. 그날의 스코어를 미리 알지 못했더라도 팀이 이겼는지 졌는지는 그의 태도로 알 수 있었어요.

우리는 외부 일 때문에 기분이 변하는 일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클리블랜드에 있을적에 유일한 예외가 있었죠. 마이크가 감독직에서 해고되기 직전(1999)에 말이에요.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런 상황 때문에 너무 기분이 안좋았죠. 왜냐면 그가 팀이 페넌트레이스를 우승하도록(1995년과 1997년) 너무나 열심히 했다는걸 알았기 떄문이에요. 그떄 우리는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재미도 없었고,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없었던 시절이었죠. 그무렵 우리는 인디언스 조직에 20년동안 몸담아왔었거든요.

Q: 많은 결혼한 선수들이 - 특히 원정기간에는 - 외도를 한다는 것이 특별히 놀라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아.. 빅리그에서 처음 몇년동안 전 마이크의 원정에 동행했었어요. 여행한 지역들 중 시애틀에 갔을 때였죠. 우린 다른 커플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레스토랑 측에서 우리를 보고 잠시 가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남는 시간동안 근처 바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죠. 쟈넷과 제가 뭔가 마시려고 하는데 갑자기 짐과 마이크가 우리 팔을 잡더니 '우리가 먼저 들어가볼께. 그냥 자리가 있는지 좀 보려고 말이야' 라고 하더군요. 전 '장난하는거에요?' 라고 물었죠. 쟈넷과 저는 그자리에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며 '저사람들 대체 뭘 하는거야? ' 라고 생각했었어요. 우리가 테이블에서 좀 기다리자 마이크가 돌아와서는 어깨를 으쓱 하며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저기 결혼한 선수가 누군가와 같이 앉아있더라구.' 그래서 전 '그건 저사람 문제지 내가 알 바가 아니잖아요'라고 했어요. 아무튼 우리는 바에 들어갔고, 만약 우리가 그냥 들어갔다면 그 커플은 거기에 계속 앉아있지는 못했겠죠.

Q: 그래서, 분위기가 어색해졌나요?

둘 다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어요. 우리는 그냥 그가 가자는 곳으로 가서 자리에 앉고는 테이블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치 교회에서 미사를 보는 것 처럼 조용하게 있었죠.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마이크, 그거 알아? 나는 우리 인생에 방해물이 끼어드는 상황은 원치 않아. 내 말은.. 우리는 나쁜짓은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우리가 난처해져야 하는거야? 나는 누구도, 어떤 방식으로도 우리 인생에 영향을 주는건 싫어.' 라고 말이에요.

Q: 그럼 다른 선수의 아내에게 그렇고 그런 장면을 보았다고 말할 것 같습니까?

음.. 나는 아무에게나 이러쿵 저러쿵 일러바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만약 내 가장 친한 친구의 남편이라면 물론 이야기해야죠.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어요.

Q: 야구선수들을 쫓아다니는 여자 광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느정도는 좀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들은 스스로 밖의 로비나 게이트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그들이 선수들에게 티셔츠에 사인해달라고 부탁하거나 뭔가 - 스킨쉽 등 - 를 한다면 그다지 좋지는 않죠. 여성 열성팬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들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가서 친밀한 관계를 가지라는 거죠. 물론 결혼하지 않았다면 문제될 것은 없어요. 우리 어머니가 저에게 해준 최고의 충고는 이거였죠. '마이크가 인기가 많은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말아라. 그루피들은 마이크가 네 남자이기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거야.' 뭐 저도 그게 좋은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Q: 당신도 몇몇 야구인의 아내들이 미디어 활동 등를 통해서 각자의 남편의 유명세에 대해 서로 경쟁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모두들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어요. 1970년대에 신디 가비가 언제나 TV에 출연했던게 기억나네요. 그런건 그냥 농담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죠. 어쩌면 고향에서의 어린시절에 그렇개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제가 55살이나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런건 그냥 재미거리로만 보여요. 제가 야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사람들을 만나고, 스탠드에 앉아서 땅콩을 먹고, 파도타기 응원을 하고, 바보처럼 응원을 하는 거에요. 진부하긴 해도 좋은걸요.. 사람들은 다들 다르게 태어났죠. 전 최신 유행의 옷이나 가방을 갖고싶어하는 사람들과는 반대의 성향을 가졌어요.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을 걸치고 다니기 보다는 다른 것들을 하고싶어요.

Q: 당신은 이쪽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인데, 그런 사실 덕분에 당신 가족들이 뭔가 다른 대접을 받지는 않았나요?

아, 전 그런건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전 그런 것들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아이들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예를 들어 애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우리 애들을 이렇게 소개했어요.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얘의 아버지는 인디언스 선수야' 라고 말이에요. 그런식으로 소개를 받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결국 우리가 누군지 알아보기 때문에 결국 그런 일들이 우리 인생의 일부가 되어버렸죠.

'우리 친구할까?' 라든지 '너 참 괜찮은 녀석이구나' 라는 식의 평범한 상황은 분명 아니죠.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모두 있어요. 전 그런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 직시하도록 노력했고, 아이들에게 뭐든 스스로 하라고 말해주었고, 그 아이들이 좋은 친구들을 만나길 바랬어요.

Q: 남편분의 이름이 그가 쌓은 모든 스탯들, 그리고 매일매일의 행동에 대한 코멘트들과 함께 거의 매일 신문에 실리는데요, 이게 어떤 것일지 상상하기가 힘들군요.

(웃음) 거의 매일매일이 낯설죠. 안그래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박스스코어를 보면 거기에 '샤론이 5개의 빨랫감을 오후에 해치웠기 때문에 5-5(5타수 5안타)를 기록했다'라고 씌여있지는 않잖아요? 다시 말해서, 누구도 박수와 야유가 일상적인 생활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야구선수에게만은 그런게 바로 매일 계속되는 일상이라는거죠.

더 피곤한 부분은 연봉 정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얼마나 버는지 알고있었나요?

Q: 아뇨. 알고싶지도 않았어요.

나 역시도 우리 아버지가 뭘 하는지조차 몰랐었어요. 그런건 개인적인 부분이에요. 하지만 야구에서는 그렇지가 않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오프닝 데이 바로 전이었는데, 신문에 모든 인디언스 선수들의 연봉이 나와있는거에요. 내 딸이 이러더라구요. '세상에, 아빠는 40만달러나 버네!!' 그래서 전 이렇게 말했죠. '아냐.. 그게 아냐. 신문들은 언제나 실수만 한단다.' 적어도 그런 일들이 잘못되었다는건 알겠더군요.

Q: 인생의 일부가 공공의 소유로 된 듯한 느낌이 들겠네요.

내 아이들이 행복하고, 잘 적응해주고, 균형잡힌 사람들이 된 것에 대해 신께 감사드려요.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을 겪으면 누구나 완벽한 환경에서 살더라도 프라이버시같은건 없다고 느낄거에요.

Q: 아드님이 어렸을 적에 야구선수였는데,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았나요?

앤디가 T-Ball을 칠때가 기억나네요. 다들 그애가 마이크의 아들인걸 알고있었기 때문에 좀더 흥미로워했어요. 결국 그런 상황 때문에, 마이크의 직업이 야구선수인걸 제외하고는 우리가 남들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다는 보통사람이라는걸 알았을 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래서 이런식으로 생각했죠. '야구는 우리의 생계수단일 뿐이지 우리 인생 자체는 아니야;' 라고 말이에요.

Q: 가족들의 입장에서, 클리블랜드에서 볼티모어로, 그리고 지금은 시애틀로 다니는건 어땠었습니까?

많이 힘들었요. 특히 20년동안 우리가 지냈던 클리블랜드를 떠날때는 말이에요. 아직 그곳에 몇몇 가족들이 있고, 정말 좋은 곳이죠. 하지만 되돌아보면 옮겨다니는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전 항상 과거를 되돌아볼 때면 모든 일이 일어나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믿거든요. 언제나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죠.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 저에겐 모든 곳이 특별해요. 야구라는건 굉장히 개인적인 운동이고 거의 매일 하는 운동이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 수위, 베이비 시터, 이웃들 - 을 만나게 되는데, 이 모든 관계들이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소중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언젠가 다시 텍사스나 클리블랜드로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지금 생각해보니 참 나쁜 사람들이었어;'라고 말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우리를 아는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돈도 좋지만, 전 우리가 야구에 몸담고 살면서 가장 축복받은 것은 바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전 그중에서도 야구계 사람들을 가장 윗줄에 놓고 싶어요.

Q: 야구와 함께 30년을 살아오면서 좀더 열성적인 야구팬이 되었나요? 아니면 덜해지거나 그대로인가요?

물론 아주 많이 열성적인 팬이 되었죠. 아주 많이 말이에요. 내가 가진 최고의 기억, 인간관계들이 누군가 모를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상태에서 내 가족이 그런 기억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전 야구를 사랑하죠..



진정한 '홈구장'의 주인공, 일생의 동반자이며 FA 계약때는 몸달은 구단의 Top 로비대상이 되기도 하는 베겟머리 송사의 주인공 = 야구선수의 와이프 (아, 하그로브의 경우엔 감독도 했으니 진정한 '야구인'의 아내로다)

그나저나 역시 성인 남자가 여자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게다가 번역하기란 망통패 들고 All in 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역시 XX 와 XY 염색체의 간격은 연병장보다도 드넓단 말인가..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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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Men - The Man in Blue

by Peter Handrinos


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베테랑 내셔널리그 심판인 에릭 그렉과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심판이라는 직업은 대개 그 자체로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직업은 아니다. 그러나 에릭 그렉은 24년 캐리어 내내 그러한 룰에 예외가 되었던 이색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확실한 이유들이 있는데, 그 첫번째는 바로 피부색이다. 그는 1975년 심판으로 데뷔하면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3번째로 흑인 심판이 된 인물이다. 300파운드 이상의 프레임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인이다. 그리고 개성이라는 요소가 있다. 경기장 안에서는 우렁찬 목소리와 표현력 있는 캐릭터로, 경기장 밖에서는 다이어트 펩시 콜라 광고나 ‘The Young and the Restless’ 의 까메오 출연 등으로 타고난 쇼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몇년은 그에게 쉽지않은 시간들이었다 1997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의 광활한 스트라이크 존은 그의 공적인 관계들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익명의 선수들은 그의 필드 내에서의 퍼포먼스에 대해 거칠게 비판했다. 1999년, 불행했던 스트라이크 액션으로 인해 연봉 25만달러 짜리의 직업을 잃게 된 후, 그는 심리적이나 재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8월 9일에 그렉과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필라델피아 지역 부근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손쉽게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볼 수 있다. 필라델피아 출신인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시티즌 볼파크가 있는 애쉬번 거리에서 '치키 & 피터의 스포츠 바'의 바텐더로 일하며 팬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있다.

빅리그에서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지만, 그렉은 야구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언제나 야구를 사랑했습니다'라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Q: '심판들의 행성'이라는 자서전에서 켄 카이저가 "자라서 폐인이나 심판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고 말했는데요.

물론이죠.

Q: 그렇다면 조금 이상한게, 언제부터 미래에 심판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까?

어렸을 적부터 저는 윌리 메이스처럼 되고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결국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의 코치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Big E, 만일 웨스트 필라델피아 고등학교에서조차 뛸 수 없다면 나중에 필리스에서 뛸 방법은 없어' 라고 말입니다.

저는 좌절해서 집으로 간 뒤에 주말 내내 어린아이처럼 울어댔습니다 겨우 15살이었거든요. 나는 항상 주말에 게임을 보곤 했는데, 거기서 커트 가우디가 '메이저리그 심판이 되세요. 6개월만 일하고도 3만달러를 벌 수 있습니다.' 고 말하는 광고를 보고 이렇게 말했죠. '저게 나에게 딱 맞는군'

전 그당시 존 미쉐리가 맡고있던 심판학교에 편지를 써보냈죠. 그는 저에게 '너는 너무 어려, 꼬마야. 21살이 되어야 심판학교에 들어올 수 있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실망하긴 했지만, 만약 괜찮다면 미국 재향군인회나 리틀리그의 심판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19살이 막 지날 무렵, 그들은 나이제한을 축소했습니다 그리고 전 고등교육을 받고, 범죄 경력이 없고, 적당한 키에 적당한 몸무게라는 그들의 자격에 적합했기에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받아들였고, 전 운좋게도 삼판학교 학급의 60명중 1등을 해서 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5년이 지나자 전 빅리그에 서있었습니다

Q: 하지만 마이너에서의 5년은 무척 힘들었겠군요.

마이너리그는 선수들보다도 심판에게 더 힘든 곳입니다. 마이너 팀에도 25~30명의 선수가 있죠. 하지만 심판은? 겨우 2명이었어요. 좋든 싫든간에 2명이서 협의하에 리그를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자동차로 이동하고, 침낭 모텔에 뜨거운 물도, 돈도 없는 힘겨운 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힘든 경험이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걸 알고있었죠. 당신이 심판을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한번 해본다면 대단한 경험이 될 겁니다.

베이저리그에 올라와서도, 계속 이동을 해야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비행의 스트레스와 새벽 서너시의 체크인, 비행기를 놓치는 일 등등. 물론 빅리그에서는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지만 그래도 힘든 일이죠. 이런 스트레스들을 감내하려면 정말 심판일을 원해야 하고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심판이 되고싶어했기에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Q: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는데 도움을 준 스승같은 사람은 없습니까?

아뇨. 전 혼자 해냈습니다. 전 뒷배경이 그다지 좋지 못해요. 가정환경에 문제가 많았었고 형들과 누나들 또한 하나씩 문제거리를 안고있었죠. 제가 가진건 오직 꿈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께 이렇게 말했죠. '나 TV에 나올거야' 그러자 어머니가 이러시더군요. '네가 TV에 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널 들어올려서 TV 안에 집어넣는 것 밖에 없을거다' 라고 말입니다. (웃음) 가족들 모두 제 말을 그냥 웃어넘겼어요.

내 친구들 중 성공한 녀석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 중 절반이 베트남에 갔고, 나머지는 일생동안 문제를 일으키며 살고있죠. 그들은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제정신이 아니야. 메이저리그에 흑인 심판같은건 없다고' 그당시에 흑인 심판은 에멧 애쉬포드 뿐이었죠. 내가 가진건 꿈 뿐이었고, 그 누구도 저에게 격려같은건 해주지 않았어요. 내가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모두가 절 우습게 여겼지만, 전 마틴 루터 킹의 이 말만 기억하고 있었죠. '만일 당신이 진정 무언가를 믿고 진정 무언가 하길 원한다면 당신은 그 일을 할 수 있다.'

전 좋은 학생이었던 적이 없었고, 좋은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 좋은 심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죠. 전 학교로 가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태도로 임했고, 결국 해냈습니다.

Q: 당신은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했나요, 아니면 야구에 대해서만 그랬던 겁니까?

대부분 야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한 전 항상 윌리 메이스를 닮고싶어했었고, 후안 마리칼같은 선수들처럼 던지고 싶어했었어요. 제가 너무나 야구를 하고싶어했었을 때도 저 말고는 아무도 야구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제가 '코니 맥 스타디움에 갈거야' 라고 말을 했어요. 버스값은 30센트였지만 제가 가진건 20페니 뿐이었죠. 그때 갑자기 버스 기사들이 돈을 확인할 틈이 없다는게 기억났어요. 일단 볼파크에 들어서자 공짜로 팝콘과 콜라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저는 비록 혼자서지만 야구로 인해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잊지 않을거에요.

Q: 당신의 자서전 '플레이트에서 일하다'에서 당신은 1975년 처음 심판을 보았을 때 에멧 애쉬포드와 어더 윌리암스의 뒤를 이어 3번째 흑인 메이저리그 심판이 되었다고 했는데요, 그점으로 인해 고충을 겪지는 않았나요?

고생좀 했죠. 특히 그들이 갖은 욕으로 저를 부르던 남부리그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저는 빈민가 출신이에요. 그런 욕들은 숱하게 들어봤었기에 그다지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어린 나이때문에 심판학교 밖에서 직업을 구해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인스트럭터였던 빅 존 미쉐리와 프랭크 풀리가 기억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헤이, 옆집에서 온 이 꼬마좀 보게나. 정말 참을성도 강하고 자제도 잘하는 것 같군' 그들이 맞았어요. 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죠. 그들은 플로리다 출신의 인종차별주의자였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좋은 파트너들을 만났죠. 그점은 신께 감사드립니다. 만일 나쁜 파트너와 오랜시간 어울리게 된다면 인생이 망가질 뿐 아니라 나쁜 습관들을 배우게 되어서 폐인처럼 변할 수도 있을 겁니다.

Q: 당신에게 있어서 군중들을 퇴장시키는건 별로 큰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만

퇴장 명령이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심판은 자리를 뜰 수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일단 본인에게 정직하고, 그 다음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심판학교의 말을 떠올려보면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과민하게 되면 프로라고 할 수 없다'라는거죠. 어떤 면에서 심판은 경찰과 비슷합니다. 한도를 넘는 것들만 제지해야 합니다. 왜냐면 당신의 행동은 곧바로 '사례'가 되니까요.

Q: 하지만 당신은 40,000명의 화난 군중들을 무시해버릴만한 사람같지는 않은데요.

예. 특히 가족들이라면 말입니다.(웃음) 기억나는게 하나 있는데, 전에 필리스의 아웃을 선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내가 2주동안 저에게 말을 안하더군요. 그녀는 래리 보와의 열렬한 팬이거든요. 관중들을 돌려보내야 할 일이 있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힘들죠. 가끔씩 화가 나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인종차별적인 말도 듣습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없지는 않아요. 팬들은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경기를 보러, 그리고 그들이 하고싶은 말을 하러 돈을 내고 경기장에 옵니다. 너무 심한 말을 하거나 경기장에 뭘 던지지 않는 한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Q: 만약 그런 것들이 괴롭지 않다면 실수로 콜을 잘못하는 것에도 그리 괴롭지 않은가요?

아니요. 우리는 항상 옳은 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하죠. '심판이라는건 시작부터 완벽해야 하고, 계속 나아져야만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직업이다' 라고요. 아시다시피 우리가 틀렸을때도 우리는 맞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선수들이 실수를 하고선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려고 하면 감정을 개입하기보다는 그들을 조절하려고 해야만 하죠. 언제나 말입니다.

Q: 선수가 심판에게 대들경우에 심판들은 애매한 상황에서 그 선수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림으로서 기분나빴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속설이 있는데요, 당신 역시 그런 적이 있었나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고, 어떤 것도 개입시켜선 안되요. 그리고 그에게 이 사실을 알도록 하는겁니다. '헤이, 여기선 내가 왕이고 내말이 곧 법이야.' 내 말은, 선수들에게 봐주는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콜을 좀더 확실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독립적인 존재여야 하기에 그러한 일을 해서는 안되죠.

우리 모두 실수를 합니다. 나도 알고 선수들도 알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머리가 아닌 양심으로부터 콜을 외쳤다면, 그게 바로 좋은 심판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Q: 볼카운트를 잊어버린 경험이 있나요?

물론이죠. 그런 일도 가끔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볼넷같은 경우에 그렇죠. 누군가 나는 심판을 하면서 그런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Q: 필드에서 가장 힘든 콜은 무엇인가요?

라인상의 대형 홈런이요. 모든 심판들이 이 콜을 할때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리틀리그나 고등학교, 메이저리그 어디든 말이죠. 사람들은 판정하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하죠 - 공을 계속 쫒으면서 시선을 집중해라. 하지만 어느정도 높이로 공이 올라가면 빛이 너무 눈부셔서 아무것도 안보이기 때문에 볼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때는 보통 추측을 하죠. 하지만 콜은 해야하지 않습니까. 보통은 제대로 된 콜을 하지만 가끔은 틀릴 때도 있습니다. 운좋게도 심판원중 누가 제대로 본 사람이 있으면 콜이 맞게 나오는거지요.

Q: 판정을 내리기 가장 어려운 구질은 무엇이었습니까?

브루스 수터의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이 가장 어려웠고, 다저스 시절의 찰리 휴즈가 던지는 너클볼도 어려웠습니다. 필 니크로도 마찬가지였죠. 그는 믿을 수 없을만큼의 컨트롤로 스트라이크를 넣고는 놀랍게도 다음 3개의 공을 덕아웃으로 던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엔 꾹 참고 '볼'을 외쳐야죠.

Q: 경기를 치르면서 속이 뒤집혔던 적이 있었습니까?

물론이죠. 1980년대 초(1982년 8월 19일)에 리글리 필드에서 다저스가 21이닝 게임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래리 보아가 날 열받게 만들었죠.

Q: 또 래리 보와인가요?

(웃음) 보와는 3루에서 득점을 하려고 했었고, 때마침 타구가 나왔어요. 하지만 마이크 소시아는 아마 홈플레이트에서의 블러킹에 한해서는 사상 최고의 포수 중 하나였을겁니다. 나는 손을 들어 세이프 판정을 내렸고, 그대로 게임은 컵스가 이기는 듯 했죠. 그런데 먼지가 걷히자 놀랍게도 래리 보와의 발이 플레이트 근처에서 멈췄지 뭡니까. 나는 판정을 번복했고, 그 다음은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렸죠. 그날 보와를 포함해서 4~5명을 퇴장시켰습니다. 단지 번복을 한번 했다는 이유만으로요.

Q: 항의가 들어왔을 때 콜을 잘못 했다고 인정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한번도 그런적은 없습니다.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라도 나는 이렇게 말했죠. '이봐, 내가 본 바로는 그래. 계속 진행하자고' 단 한번도 항의때문에 콜을 번복한 적은 없습니다.

Q: 선수들이 이닝과 이닝 사이에 당신과 이야기하는걸 좋아하던가요?

나는 선수들과 항상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포수들, 타자들과 언제나 농담을 하곤 하죠. 그들도 내가 이 직업을 좋아하는걸 알고있거든요.

Q: 필드 밖에서도 선수들을 만납니까?

경기가 끝나고 나서 모두들 스포츠 바에 가곤 했습니다. 바 건너편에서 슈미티(필라델피아 3루수 마이크 슈미트를 이야기하는 듯 - 역자 주)를 보게되면 그에게 한잔 사고, 그도 나에게 한잔 사곤 했죠. 하지만 선수들이 떼지어 모여있는 경우엔 그들에게 다가기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내가 스티브 칼튼에게 보크를 선언한 적이 있었죠. 그 다음에 레스토랑에서 필리스 선수들 4명이 묻더군요. '어떻게 좌완에게 보크를 선언할 수가 있죠?' 그래서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들.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노크를 해봤자 물건너간 일이야.' 라고 말입니다. 끝난건 끝난거 아니겠어요?

Q: 생각나는 선수들 중에서 괜찮았던 사람이 있나요?

오, 물론이죠. 나는 선수들에게 룰을 잘 지킬 것을 요구했었습니다. 몇몇은 그랬고, 몇몇은 아니었죠.

리치 알렌은 제가 어릴적부터 팬이었는데,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었죠. 불 루진스키는 정말 과묵한 사람이었고, 제이 벨은 모범생 타입이었어요. 6타수 무안타인 상황에서조차 불만 한번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빅리그에서 보낸 첫달이 기억나네요. 애스트로돔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누구세요?'라고 묻자 '토미 존입니다. 당신이 좋은 게임을 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요. 당신은 신참이지만 이번처럼만 심판을 본다면 오랜동안 잘해낼 수 있을겁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죠. 정말 기분이 좋더군요. 파트너였던 프랭크 풀리와 심판장 덕 하베이가 어떤 식으로 존이 강력한 슬라이더를 던지는지 알려주었고 전 꼭 붙어서는 스트라이크만 제대로 판정을 했었습니다.

Q: 그럼 안좋았던 인물들은 누가 있었나요?

한명 있었죠. 그의 이름은 팀 폴리였어요. 심판들에게는 골칫거리였지만, 정말 똑똑해서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할지 알고있었죠. 딱 열받을 정도만 말을 하고, 퇴장시킬 정도의 선은 넘지 않는 녀석이었습니다.

Q: 당신이 퇴장을 시키는 주된 이유는 뭐였습니까?

심판에게 직접적으로 뭔가를 말한다면 그건 바로 퇴장입니다. ‘You a------, you suck, you mother------, you stink’ 등등이 있죠. 볼과 스트라이크를 가지고 논쟁을 하려고 하면 안돼요. 무릎을 꿇거나 갑자기 등을 홱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들은 일단 처음에는 경고를 하고, 아무나 퇴장시키지는 않아요. 그러니 언제 멈춰야할지를 선수들이 잘 알아야 하죠.

(웃음) 라소다가 최고였어요. 그는 언제나 논쟁하러 뛰쳐나오곤 했었습니다. '이리와봐, 당신이 잘못 판정한거잖아' 라며 말입니다. 그럼 전 이렇게 말하죠. '토미, 비슷하지도 않았어요.', '이거 전국방송이야?', '아니요',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그냥 장난으로 뛰쳐나온거였죠. (웃음)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심각합니다. 마치 날 죽이려는 듯이 말이죠. 물론 대부분의 감독들은 다음날이면 다 잊어버리고 뒤끝이 없습니다만. 전 심각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게임을 결정하려고 여기 있는게 아니에요. 진행하려고 있는거지.'

Q: 팀의 전의를 불태우기 위해 퇴장으로 자신의 한몸을 희생하러 나오는 감독도 있었나요?

라소다가 가끔 그랬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스파키 앤더슨도 가끔 나가고 싶을때 그랬었고, 벅 로저스는 한번 제발 퇴장시켜달라고 빌다시피 하더군요. 그의 말에 따르면 '나도 당신이 제대로 판정했다는걸 알아요. 하지만 내 선수들좀 봐바. 바보들이 따로 없잖아. 제발 나좀 퇴장시켜달라고.'

가끔 레니 다익스트라같은 선수들도 있죠. 93년에 디비젼 우승을 차지하고서는 토요일 밤에 다들 밤새도록 파티를 했나봐요. 그때 장소가 세인트루이스였고, 필드 기온이 거의 110도(섭씨 43도)에 달했었습니다. 다익스트라는 그가 라인업에 들어있는걸 보고 열이 받았죠. 그가 2루에서 10피트쯤 떨어져있을 때, 갑자기 미쳤는지 날 보고 '팻 앞버트' (빌 코스비의 코미디물, 뚱뚱한 흑인이 주인공이다 - 역자 주)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준 후, 이렇게 말했죠. '좀 기다려봐, 뭘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아.' 물론 그는 그날 3시간의 게임을 풀로 뛰어야 했습니다.

Q: 플레이오프가 다가오면, 과거의 실수들에 대한 기억 - 1985년 돈 덴킹어 건이나 1996년 ALDS의 리치 가르시아 건 - 들이 떠올라서 초조해지지는 않았습니까?

나에게 있어, 1997년 플레이오프의 광활한 스트라이크 존이 그랬죠. 브레이브스가 15개의 삼진을 당했지만 그들은 매덕스 또한 9개의 삼진을 잡았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어요. 그 게임이 끝나고서 매덕스가 말하더군요. '에릭, 그들이 말한 것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팀에는 4명의 사이영 위너가 있는데 당신이나 풀리, 몬티지같은 사람들이 스트라이크를 판정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공을 던질수도 없었을겁니다.'

월드시리즈도 그렇게 압박감이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다들 릴렉스해지죠. 왜냐면 거기 서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하니까요. 몇몇 팀들은 너무 행복해하는 나머지 정작 WS에서는 망가지기도 하죠.. 2004년 세인트루이스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이기지 못한다면 월드시리즈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압박감이 더 심하죠. 선수들도 그럽디다. 플레이오프가 월드시리즈보다 훨씬 힘들다구요.

Q: 나는 항상 왜 도박꾼들이 심판을 매수하려고 하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지 궁금했었습니다.

빅리그에 있으면 우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죠. 그들이 나를 체크합니다. 저의 배경을 알고있기도 하죠. 우리는 도박장같은 곳에는 가지 않아도 될만큼 충분한 액수의 돈을 받고있지요. 제 말은 설령 우리가 뇌물을 받았더라도 일단 게임에서는 나쁜 짓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을 받고있다는 겁니다. 플레이들을 제대로 판단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일부러 잘못된 판정을 내리겠다는 생각같은건 하기도 힘들죠. 그런 생각은 마음속에 가져본 적도 없습니다.

Q: 즉석 리플레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처음 심판을 시작했을 무렵을 되돌아보면, 그당시에는 즉석 리플레이같은건 없었죠. 지금은 야구장에 팬보다도 많은 숫자의 카메라가 설치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카메라들로 심판의 얼굴을 비치곤 하죠!!

심판도 근본적으로는 사람입니다. 지금 NFL에서는 심판들이 터치다운이라는 콜을 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왜냐면 자신의 판정이 뒤집히는게 겁나기 때문이죠. 만일 심판이 플레이를 판정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면 물론 콜을 하겠죠. 우리 역시 사람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죠. 하지만 우리가 내리는 판정의 99%는 옳은 판정이에요. 그정도도 못하는 사람들은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합니다.

Q: 만일 당신이 모든걸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면,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서의 삶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심판으로서 살겠습니까?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전 빈민가 출신의 어린이가 23년동안 야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데 대해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죠. 야구인으로서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선수보다 심판으로서 더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게임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야구장에 서있었고, 단 하루도 출장을 걸러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덕아웃이나 불펜으로부터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Q: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자 재미있는 사람, 매순간 자신의 직업을 사랑한 사람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최고의 심판은 아니었지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원문보기

잘해야 본전, 못하면 독박.  팬들에게는 그저 욕먹기 위한 존재들.

그러나 야구라는 게임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자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인 심판에 대한 인터뷰이다. 가끔 잊어버리고 살지만, 심판에게 욕을 던지기 전에 기억해야할 한가지. '그들도 사람이다. 기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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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Men - The Scout

by Peter Handrinos


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브레이브스 명예의 전당 멤버인 폴 스나이더와 함께 계속하도록 한다.

전쟁에서 장군들은 호사스러운 전기문을 얻고, 밑바닥 병사들은 무거운 짐만 진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야구에서도 아주 적절한 말이다. 불가피하게도, 대부분의 관심들은 프런트라인에 주어지기 마련이다. 스타 슬러거와 파워피쳐들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백만장자가 된다. 페넌트레이스를 승리하는 감독들은 프런트 오피스로 이동할 수도 있고, 브라이언 캐쉬먼이나 테오 엡스타인처럼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거나 그들에게 코멘트를 해줄 수도 있게 된다.

요즘, 방송가들이나 선수들의 에이전트조차 사인을 해주고 현란한 기자회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야구계의 밑바닥 병사인 스카우팅 스태프에게 있어 그런 일들은 딴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아, 내부 인사들은 아마 스카우트, 드래프트, 사인을 담당하거나 젊은 선수들을 발전시키는 조직 사람들에게 가끔 찬사를 늘어놓기도 하겠지만, 그뿐이다. 오직 가장 헌신적인 팬들만이 그들의 응원팀 스카우팅 디렉터나 마이너리그 디렉터의 이름을 알고있다.

고단하게 전국의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를, 그리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무명의 인물일 뿐이다. 스카우트들은 아마도 야구계의 새로운 재능을 채워주는 기반일 테지만, 명성과 행운은 그들의 직업을 소개하는데 전혀 필요가 없는 단어들이다. 만일 언젠가 덜익은 재능들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그에 맞는 대가를 얻을 때가 온다면, HOF에서 그들이 마땅히 차지해야 할 부분보다 훨씬 덜 차지하고 있는 지금, 그 선구자로서 찬양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브레이브스의 폴 스나이더이다.

스나이더의 야구경력은 그가 18살이던 1957년에 1루수 유망주로 사인하던 때 시작되었다. 뛰어난 마이너리거였던 스나이더는 부상때문에 발이 묶였고, 결국 1963년에 현역 선수에서 은퇴를 결심했다. 몇시즌이 지난 후, 마이너에서 감독직을 맡고있던 스나이더는 스카우트로서, 마이너리그 부행정관으로서, 스카우팅 및 선수발전 담당 디렉터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1999년에 은퇴한 이후 그는 브레이브스 단장 존 슈어홀츠와 스카우팅 디렉터 데이튼 무어의 특별고문역을 맡고 있다.

누구의 말을 빌더라도, 폴 스나이더는 수년, 또는 수십년동안 쌓여온 브레이브스 선수 발전 시스템을 구축한 단 한명이다. 그리고 그게 팀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Very' 1991년 이후 14년 연속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제패라는 깨지기 힘든 기록을 만들어낸 브레이브스 조직은 팀의 성공 뒤에는 선수를 성공적으로 육성하는 팜 시스템이 있다는 매우 강력하고도 옳은 힌트를 전달해준다.

브레이브스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꾸준한 레귤러 시즌의 승자였던 이유가 그들이 역사상 가장 꾸준하게 재능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을 갖고있었다는데 - 1991년에서 2004년까지 무려 13년동안 브레이브스 출신의 루키가 ROY 투표에 후보로 올라갔었다 -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그 많은 유망주들은 결국 스타가 되었고 (데이빗 저스티스, 탐 글래빈, 앤드류 존스, 치퍼 존스, 저메인 다이, 하비 로페즈), 올스타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 (제프 블라우저, 스티브 에이버리, 라파엘 퍼칼, 라이언 클레스코, 마커스 자일스, 마크 월러스, 마이크 스탠튼)도 많았다.

2005 시즌은 아마도 브레이브스의 당해낼 수 없는 스카우팅 및 선수발전 시스템을 완벽하게 증명해준 시즌이었을 것이다. 치퍼 존스와 3명의 선발투수들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졌던 65게임을 치른 이후, 이 팀은 겨우 5할을 넘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은 여름 중반에 제프 프랑쿠어와 12명 이상의 어린 선수들이 합류함으로서 또다시 NL East를 제패했다. 또다시 애틀랜타는 재능이 넘치는 팀이 되었고, 이기는 팀이 된 것이다.

이것은 특히 대단한, 기나긴 메이저리그 역사에도 견줄 상대가 없는 기록이다. 브레이브스 역시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이 슈퍼 스카우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7월에 그에게 스카우트로서는 전례가 없는 HOF행 티켓을 끊어주었다.

폴 스나이더의 많은 친구들은 그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낙관적이고, 친절한 마음씨의 소유자라고 말해왔다. 우리의 오랜 대화로 미루어볼 때, 나 또한 이에 대해 논쟁할 생각은 없다. 8월 29일, 이 베테랑 경력의 야구 달인은 그가 야구계에 살아오면서 얻은 것들에 대한 지혜들을 말해주었다.

Q : 언제 처음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아마 3~4살때 쯤에 할아버지 댁의 뒷마당에서 야구를 시작했을 때일 겁니다. 나의 부모님은 그때 할아버지와 함께 사셨고, 삼촌과 이웃들이 나에게 공을 던져주고 어린이용 배트로 그걸 스윙해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부터 나는 인생동안 야구를 하고싶다는 것을 알았나봅니다. 학교에 진학해서는 풋볼 장학금을 받았지만 언제나 야구를 사랑했었죠.

Q : 언제 처음 당신이 메이저리거로서의 자질을 갖고있다고 느꼈나요?

거기에 대해선 사연이 좀 있지요!!  내가 15살 때 게임당 $50, $60, $70의 돈을 받고 전에 세미프로에서 뛰었던 선수들과 게임을 했었어요. 스털링 아놀드라는 친구가 그때 같이 게임을 뛰었죠. 그 친구는 3~4년 카디널스에서 뛰었는데 내가 21~22살일 무렵에 나를 보러 펜실베니아의 요크 카운티로 돌아왔어요.  스털링은 계속 나를 따라다니면서 '넌 이곳에 있을 애가 아니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걸 그에게 걸었죠. 사실 나는 브레이브스 명예의 전당 수여식 전에 그를 불렀어요. (그는 지금 85~86살이죠) 난 그에게 '당신이 또 해냈어'라고 말했고 그가 '내가 뭘 했는데?'라고 물었죠. 나는 그에게 내가 얻은 영예에 대해 말했고, 그가 이렇게 답했죠. '여기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거군 (웃음)'  나는 실제로 내 모든걸 그에게 걸었죠.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배관공이 될 뻔 했었지만, 스털링 아놀드는 내가 야구계로 첫발을 내딛도록 설득해주었어요.

Q : 음..  당신은 정말 좋은 마이너리그 커리어를 쌓았지만, 단 한번도 메이저에 서지 못했습니다. 왜 당신은 현역 선수에서 그대로 은퇴하기로 마음먹었습니까?

나는 끝이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1963년에, 나는 텍사스 리그에 있었고, 1년동안 .312에 18홈런, 113타점을 올렸죠. 나는 덴버에서 Jack Tighe 밑에서 뛰고 있었는데 잭이 나를 한쪽으로 끌고가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제 슬슬 감독 커리어를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어?' 그는 내 얼굴이 약간 붉어진걸 보더니 샤워를 하고 오라더군요. 그리고는 게임이 끝난 후에 먹을 것을 약간 사주었죠. 그는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더군요. 내가 단 한가지의 툴 - 배트를 휘두르는 것 - 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Q : 마이너리그 감독들은 그동안 보내온 날들에 비해서 굉장히 이질적인 직업이었을 것 같은데, 왜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곳에 남아있기를 택한겁니까?

1959년 가을과 1960년 초에 나는 밀워키의 병원에서 돌기 용해술로부터 회복중이었습니다. 모든게 비참했었죠. 그래서 로널드 해먼드 - 향후 브레이브스의 어시스턴트 스카우팅 디렉터가 된 - 가 나에게 은퇴 후에라도 야구계에 머물러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바가 없습니다만, 아마 하고싶을 것 같군요. 아는건 없지만'

Q : 해먼드씨는 물론 그 스스로도 전설적인 재능 평가원이었지만, 미래에 화이트삭스와 오리올스의 GM으로 커리어를 쌓을 분이었죠

나는 그분의 많은 것들을 모델로 삼으려고 했어요. 우리 모두를 잘 돌봐주신 인도주의자였죠. (한때 브레이브스의 마이너리그 감독이던) 해리 마이너는 나에게 어떻게 젊은 선수들을 다룰 것이며, 어떻게 선수들이 스스로 신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게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잭 티에는 물론 나에게 비지니스에서 정직함이 갖는 의미를 알려주었죠.

Q : 당신이 은퇴한 뒤, 몇년 후에 곧 마이너리그의 감독이 되었는데, 그게 당신의 향후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습니까?

나는 방출되었지만, 슬퍼할 틈도 없었습니다. 곧바로 방출서명에 사인을 하고 다시 매니저 계약에 서명해야 했으니까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었죠. 마이너 감독은 스카우트와 유망주에 대해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모든 스카우트들은 반드시 감독직을 거쳐봐야 하고, 모든 감독들은 스카우트들을 거쳐봐야 합니다. 나는 감독들에게 100번도 더 들었어요 - 누가 이넘을 추천한거야? 라고 말이죠. 유망주가 필드 스카우팅에서 탈락한다면 감독들은 누가 그녀석을 추천했는지 알고싶어할 뿐 아니라 그를 추천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알고싶어할 겁니다.

Q : 스카우팅 디렉터로서, 당신은 고용을 담당했습니다. 당신의 미래 중 일부를 를 스카우트에서 발견해가는 것은 어땠었나요?

그게 나의 직업이었죠. 선수들을 체크하러 밖에 나가면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선수를 체크하고 누가 또 남아있는지 둘러보려 합니다. 그 지역에 딱 한명의 스카우트만 필요한 상황이라도 말이죠 - 어떻게 한사람이 27아웃을 전부 챙겨볼 수 있겠어요? 만일 우리가 반대편 펜스쪽에서 스카우트를 발견하게 된다면 혹시 그들이 주목하는 선수가 브레이브스와는 다른 선수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쪽 팀에서는 조심해야해요. 왜냐면 우리가 이미 그들이 노리는 선수에게 오퍼를 날렸을 수도 있거든요.

Q : 스카우트들데게는 선수 출신이라는 뒷배경이 필요합니까?

대체적으로 그들 중 대부분이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프로 레벨의 선수로 뛰는 것은 더이상 필수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번도 선수로 뛰어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고용했고, 그들은 어떻게 선수를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만 알고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에게는 야구인인거죠. 내 말은, 존(GM 존 슈어홀츠)도 프로로 뛰어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의 이해력은 그야말로 놀라울 뿐이죠.

Q : 어쨌든 스카우트라는건 기본적으로 고된 직업입니다. 그들 모두가 계속 여행을 다녀야 하고 그것도 소도시나 촌구석을 장시간 다녀야 하죠.

우리는 그들 대부분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1년에 11개월은 나다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종류의, 상당히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빌 클락이 우리의 국제 프로그램을 마련했을 때, 그는 아마 1년동안 주말 3번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을 거에요. 그는 타고난 전사이죠. 그들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합니다. 그들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죠. 당신도 스카우트가 백만장자로 은퇴하는건 본 일이 없을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볼파크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 행복한 표정을 짓는 스카우트들을 많이 볼 수 있죠.

Q : 팀의 정책을 읽어보면, 스카우트들의 임무가 브레이브스 조직의 상징같아보이는데요.

스카우트에 의지해야 하죠. 스카우트들은 야구 조직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고 스타 플레이어들을 조직에 끌어들일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바비와 존 (바비 콕스 & 존 슈어홀츠)이 우리 스카우트들에게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형제처럼 대한다는 것을 알고있어요. 그들은 항상 우리 스카우트들을 반겨주고 필요로 합니다. 존이 야구계의 이쪽 면에 있었고, 우리처럼 고생햇다는 사실은 신만이 알고있을 겁니다. 그는 직접 겪어봤기에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알고있죠.

Q : 모든 팀들이 반드시 스카우트들을 고용해야하는건 아니라는 철학이 있는데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많은 팀들이 스탯을 사용한 분석이 좀더 객관적이고 효과적이라는 믿음 하에서 현장 평가원들의 규모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의 젊은 단장들이 그들의 나이든 스카우트들을 해고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왜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스탯 뿐 아니라)경험에도 의존을 해야해요. 베테랑 스카우트들이 갖고있는 개인적 정보와 관계들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나는 한번 누군가 이런 소리를 하는걸 들었죠. '당신은 나머지 사람들을 긴장시키기 위해 매년 당신 밑에 있는 한두명을 해고해야 한다. ' 이건 아주 단편적인 말일 뿐입니다. 그럴거면 애시당초 왜 고용을 했던거죠?

Q : 고등학교나 대학교 코치들이 가치평가에 있어서 너무 많은 도움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지는 않나요?

이 나라를 통틀어서 제가 오랜동안 진실하게 이야기하고, 솔직하게 대할 수 있는 코치들은 얼마 안됩니다. 그들은 나에게 살갑게 대하려고 애쓰거나 그들의 선수를 팔아넘기려고 노력하지도 않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웃음) 나는 내가 직접 아이들의 능력을 평가하려고 노력합니다.

Q : 야구 재능에 관해 가장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바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죠. 위대한 스카우트들은 그 각자 다른 경기들에서 그 차이점을 발견해낼 수 있지요. 어떤 스카우트들은 똑같은 선수에 대해서라도 다른 스카우트들이 슬럼프라고 판단할 때 조차 뭔가 뜨거운 것을 발견해내는데요, 당신은 어떻게 차이점을 발견해내곤 합니까?

가끔은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만 드래프트 당일에 방에 있으면 우리 팀의 모든 스카우트들은 같은 페이지를 펼칩니다. 우리는 반나절동안 한명의 특별한 유망주를 위해 논쟁하며 앉아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몇년 전, 우리는 한 젊은 친구 - 나중에 뛰어난 메이저리그 투수로 판명된 - 를 중복체크했던 적이 있었어요. 한명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젠장, 폴. 난 내가 본 것만 봤어.'  우리는 그 선수를 관찰하기 위해 3게임에 3명의 스카우트를 파견했었고, 그들은 역시 그들이 보는 것만 봤죠. 나는 그에게 다른 면을 관찰하라며 돌려보냈고 그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나머지 부분들을 보고 난 후에 돌아왔어요.

결국에는 항상 '우리'가 해내는거죠. '나'는 혼자서는 야구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당신과 나'는 함께 뭔가를 해낼 수 있죠.

Q : 나는 스카우트들이 자신의 능력이 평가받을 때는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들은 자신의 스카우트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굳이 팀의 일선에 그를 놔둘 필요가 없는거죠. 하지만, 드래프트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의견을 피력해야 해요. 스카우트를 다그칠 때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가 어째서 탑 플레이어를 놓쳤는가를 알아내기 위함이죠. 그가 스카우팅 디렉터, 어시스턴트 스카우팅 디렉터, 4명의 내셔널 교차체크 담당관들과 대면하고 있고, 우리가 그를 질책할 때라도 우리는 그가 옳다는 것을 확신하고 싶어합니다.

누군가를 '눈먼 개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정말 드물죠.(웃음) 그리고 나서 30분 후에는 그와 함께 점심을 먹습니다.

Q : 당신도 그런 시험에서 질책당하는 편에 서본 적이 있습니까?

정말 많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투수를 영입하는데 실수를 했죠. 나는 그에게 1mil을 쥐어줬는데, 예산을 13만불 오버했어요. 그 젊은이는 곧 빅 리그에 올라갔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런 선수는 아니었죠. 나는 돌아와서 음악을 틀고 교회에 간 좀도둑처럼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장) 스탠 캐스턴이 말했죠. '분명히 당신은 그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거잖아' 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전 확신했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하더군요. '실제로 그러길 바라네'

Q : 잠시 스카우팅 작업으로 돌아가봅시다. 당신의 접근방법에서 약간 다른 점은 젊은 선수들을 평가할 때 반드시 레이더건을 쓰지는 않는다는 것인데요.

예, 맞습니다.

Q : 그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아마도 나의 그런 생각 중 50%는 브레이브스의 전 중복조사단 멤버였던 빌 화이트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역시 바비 매틱에게 가르침을 받았죠. 나는 투수들이 3~5번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을 살펴보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보라고 배웠습니다. 빌은 항상 이렇게 말했죠. '레이더건은 필요없어'  왜 십대가 얼마나 빠르게 던지는지를 고민해야 하죠? 가장 객관적인 사실은 그가 타자들을 아웃시켰다는 것인데 말입니다.

Q : 게임에서 선수에 대한 감을 어떻게 짚어내는지가 궁금합니다. 선수의 능력이나 게임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좀더 잘하려는 의지를 어떻게 캐치해내시는지요?

몇년간 선수를 본다면 좀더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선수는 아무 말 없이도 뭔가를 전달해주죠. 만일 스카우트가 당신의 직업이라면, 당신 또한 말 한미디 없이도 뭔가 - 내가 말하는건 바디 랭귀지같은 그런 것들이죠 - 를 알아챌 수 있을 겁니다. 게임, 또는 일반적인 삶에서의 접근방식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것도 알아낼 수 있지요.

수년간 나는 드래프트 전의 워크아웃에서는 모두들 클럽하우스에서 공과 배트를 놓고 있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플레이하는건 이미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이죠. 우리가 선수들과 잠시 걷거나 이야기만 해보더라도 해가 질 무렵 쯤에는 그들에 대해 좀더 잘 알고있을 겁니다.

Q : 유망주들의 필드 바깥에서의 가치를 결정할 때 품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상당히 크죠. 인격은 정말 대단히,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좋지못한 여자친구나 와이프, 나쁜 습관들, 마약, 알콜, 현대생활에 따라오는 질병들(성병 이야기인 듯) 때문에 수많은 재능있는 선수들을 잃어왔어요. 우리는 확실히 신체적 결함보다는 이러한 것들 때문에 선수들에 대한 손실을 입곤 합니다.

Q : 여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필드 바깥에서는 나쁜 버릇을 갖고있지만, 필드 안에서는 오직 운동능력만으로도 메이저리거가 될만한 선수를 스카우트해본 적이 있나요?

(웃음). 오.. 아니요.. 만일 젊은이가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아마 마이너리거는 되겠지만 결국 계속 마이너리거로 남을 겁니다. 당신은 이렇게 질문해야해요. '당신은 당신의 딸이 그와 데이트하기를 원합니까?'  그게 답이죠.

Q : 그럼 반대로, 좋은 품성과 습관으로 인해 예상외로 베이저리그 레벨에 도달한 선수 중 당신 마음속에 남아있는 선수가 있나요?

Mark Lemke가 기억납니다. 1983년 27라운더였죠. 우리는 그가 백업 내야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우리를 놀라게 했죠. 그는 포기할 줄을 몰랐어요.  마이너리그에서, 지금은 불펜코치인 바비 듀스는 글렌 허바드같은 선수들을 엄격하게 훈련시켜야만 했어요. 왜냐면 그 선수가 또 가외연습을 하는걸 막아야 했거든요. 나중에 Macon에서 감독이 된 글렌은 가외 연습을 통해서 마커스 자일스같은 선수를 개발해냈죠.

Q : 당신이 저평가했다고 생각되는 선수들이 있나요?

오.. 다 잊어버렸어요. 왜냐면 다 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죠.(웃음)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누군가가 있죠. 바로 한명의 GM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스카우팅 디렉터가 되었을때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했겠죠. 그러니 뭐 비긴거 아니겠어요?
베테랑 GM인 폴 리차드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죠. '한가지를 잃어버리면 그건 마음속에서 지워버려라.' 라고요. 나는 그때 얻은 가장 소중한 충고를 실천하려고 애썼습니다.

Q : 유망주들을 평가한 뒤에, 샤이닝 보너스에 대한 오퍼는 어떻게 결정하나요?

언제나 선수들에 대한 가치를 평가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말이죠. 우리가 선수를 평가할 때, 우리는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죠. 그리고 한명의 스카우트와 4명의 내셔널 교차 평가단이 틀을 짜놓은 것에 기초해서 결론을 내린 후에 샤이닝 보너스를 제시합니다. 매우 공정한 금액으로 말이죠.

Q : 그들과 사인하는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겠군요.

(한숨). 오.. 피터..  나는 수백만달러의 돈을 고집하는 선수들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나 내 앞에 돈을 내민다면 우리는 물론 그걸 받겠죠. 남은 커리어가 겨우 1~2년 뿐이라면 말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고 싶은건 바로 이거에요. '이번 계약이 앞으로 네가 사인할 마지막 대형계약인가?' 라고 말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네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겠죠.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만약 어린 선수들이 앞으로 샤이닝 보너스만큼 벌지 못할 것을 두려한다면, 메이저에서 그런 계약을 따낼 자신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런 녀석은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죠. 우리는 그가 그 자신을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Q : 당신의 스카우트들은 마이너리그 발전 스태프와 얼마나 가깝게 지냅니까?

대체적으로 우리 스카우트들은 일류 마이너리그 인스트럭터들이 뭘 할 수 있는지 알고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협력은 어쨌거나 또다른 이익을 만들어내죠. 우리 인스트럭터들은 스카우트들의 평판을 좋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만큼요. 한번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브레이브스는 매번 원하는 만큼의 투수들을 만들어내는거지?'  (AAA) 리치몬드에 빌 피셔의 머리색을 구경하러 가본 적이 있습니까? 그에게 머리가 남아있던가요? 아니면 (A) 미틀 비치에 브루스 달 캔튼을 보러 가본 적이 있나요? 그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정말 더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머리가 세었습니다.

어린 마이너리그 감독을 고용할 수도 잇고, 어린 코치들을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수코치만큼은 베테랑이 맡는게 좋죠. 자기가 전성기를 맞이해본 사람이 어린 선수들에게도 전성기를 맞게 해줄 수 잇습니다. 우리 조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들의 초첨은 그들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야구계의 미래에 맞추어져 있지요.

Q : 그들이 바로 장인(Lifer)들이죠.

말 잘했습니다. 빌 피셔에게 뭐가 필요하겠어요? 그는 돈도 필요없어요. 그는 게임을 사랑하고 가르치는걸 좋아할 뿐이죠.

Q : 가르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시다. 브레이브스는 모든 부문에 뛰어난 운동선수에게 야구선수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본 적이 있나요?

시도는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1981년에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녀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야구선수로 바꿔놓으려고 5만달러와 1라운드 픽을 바쳤죠. 그래서 우리는 제이 로버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 대표 러닝백이자 라인백이었고, 주 대표 농구선수이자 440야드의 투창 신기록을 갖고있는 녀석이었어요. 그는 고등학교때 야구를 하지 않았지만 6피트 3인치에 190파운드의 몸을 갖고있었죠. 결국 로버츠는 야구에서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실패라는건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였죠.

Q : 나는 항상 야구선수가 메이저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희생 -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라도 마이너를 거쳐야 하는 - 에 대해 놀라워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희생이라..  희생이 맞겠죠. 비록 결국 10~11퍼센트의 선수들만이 그 문에 도달하게 되니 말입니다. 인생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은 전혀 영광스러운 부분이 아니죠. 나도 6년간 뛰어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있습니다.

Q : 야구계에서 또다른 유일한 점 - 스카우트들이 가끔 진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스카우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해주죠.

맞습니다. 정확하게 맞는 말씀이죠. (브레이브스 어시스턴트 GM) 데이튼 무어와 (유망주) 제프 프랭쿠어를 만났던게 기억납니다. 우리는 이 만남을 전혀 미화시키지 않았고, 제프 역시 그가 뭘 얻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가능한 한 정직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나 자신에게 갖고있는 프라이드이기도 하지요. 나는 이제껏 어떤 선수에게도 거짓말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군요. 만일 어린 선수에게 그의 기회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면 문제거리를 만드는 일일 겁니다. (이 부분 번역은 매끄럽지 못한 관계로 원문을 참조하길 바랍니다 - 역자 주)

Q : 동시에 좀 교활한 면도 있어야 겠죠. 만일 외부인들이 당신이 누군가와 계약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게 드래프트나 사인을 좀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당신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하비 로페즈를 보기 위해 표백업자들 밑으로 기어다닌 사실을 들었나보군요. (웃음) 맞아요. 우리는 뭔가 하고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하죠. 우린 시즌이 끝나기 1주일 전이나 10일 전, 또는 시즌 전이 되기까지는 납작 엎드려있곤 합니다. 그리고 스카우트들과 교류를 하면서 개인적인 경로를 찾곤 하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엔 일이 잘 되고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죠.

Q : 종종 회자되는 이야기들 중에서, 드물지만 유망주들이 그들이 바라는 조건 때문에 계약을 단념하는 경우가 있죠. 그럴때면 대부분 팀이 선수들의 등 뒤에서 유니폼을 찢어야 한다더군요.

좀 솔직하게 바라봐야 하죠. 나는 그들에게 최선의 노력을 바랍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말이죠. 나도 (선수시절)5년간 최고 대우를 받고싶어했다는 걸 알고있습니다. 뭐 나는 실패했지만, 대신 여기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43년이 있지 않습니까!

Q : 당신이 드래프트한 픽일지라도 얼마나 희생적이고 열심히 노력했냐에 관계없이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죠.

아..  내 아내는 선수를 방출하기 전날 밤이 되면 항상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면 내가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을 못이루니까요. 지금 50년간 야구계에 몸담아왔지만, 그리고 100년이 되어도 나는 야구계에 있을테지만 이건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내가 과거에 꾸었던 그 꿈을 누군가도 한껏 꾸고있었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내가 포기하기 힘들었던 만큼 그들도 저버리기 쉽지 않겠죠. 난 여기 앉아있었지만 그들과 함께 울었어요. 피터, 정말 그들과 함께 울었단 말입니다.

Q : 동시에 당신은 어린 선수들이  꿈을 이루는 것을 볼 기회도 있었죠. 16~17세의 선수들이 생산적인 메어지리거로 변해가는 것 말입니다.

오.. 그런 날들은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죠. 정말, 정말로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Q : 의심의 여지 없이 당신은 아마 수년간 가장 인기있는 스카우트일텐데요.

나는 그 상(브레이브스 명예의 전당)이 발표되는 순간 뭔가에 강하게 얻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고, 내가 그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말해주었죠. 내가 받은 감사들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에요. 그것도 야구계에서 명성을 얻은 사람들로부터 말입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지만 말이죠.

Q : 야구를 떠난 이후에, 건강을 위해 뭘 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아..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하는게 좋겠군요. 내 아내가 목소리가 닿는 곳에 있거든요. (웃음)

나는 좋은 아내를 가졌습니다. 내가 페티를 만났을 때 나는 마이너에 있었죠. 나는 그녀에게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구선수와 결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웃음)  Hall of Fame  축하연에서, 나는 나의 아내와 자식들, 아들의 가족들과 딸의 가족들에게 감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미친놈처럼 야구경기를 보기위해 이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을 이해해준 데 대해서 말이죠.

당신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해야겠군요.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게 다 좋았어요. 나는 항상 이 위대한 게임 - 야구 - 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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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키튼이라는 만화에 '인생의 달인'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사람이라면 'Master, 야구의 달인'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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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팬이자 동시에 한국 유일의 SF 팬포럼인 Yourgiants.com의 회원이기도 하다.  그곳의 주인장 ARAS님이 발견한 미국의 수준높은 자이언츠 팬보드에 들렀다가 우연히 스카우트 닷컴의 글을 보게 되었고, 그 이후 그 글의 출처를 발견하다가 Scout.com의 Baseball Men 시리즈를 발견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간 식어가는 MLB 시장과 반면 뜨거웠던 한국 야구의 오프시즌 - 특히 두산과 박명환 - 덕분에 MLB에 흥미를 약간 잃어가던 필자에게 그 Thread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으며, 번역하려고 준비해두었던 유망주 리스트조차 내팽개치도록 만들었다.  누가 미리 번역해서 올렸건, 아니면 이게 MLB 팬들이 모두 읽어본 백드럼이건간에 번역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고,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기나긴 번역의 스케줄을 잡게 되었다.

뒷북이건 아니건..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고, 그 제목들의 리스트를 보았을 때의 두근거림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필자와 같은 마음으로 느끼셨으면 한다.

더불어 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연재하고 있는 피터 핸드리노스(Peter Handrinos)에게 찬사와 경탄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시작해보자.  스타트!!

Baseball Men - The Analyst
by Peter Handrinos

우리의 '야구계의 사람들' 시리즈를 빌 펠버 - '책속의 책' 의 저자 - 와 함께 시작하도록 한다.

야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역사적인, 그리고 기초적인 숫자에 의해 잘 표현되는 스포츠이다. 야구는 항상 1아웃 당 3개의 스트라이크를 필요로 하고, 1이닝 당 3개의 아웃을 필요로 하며 1게임당 9개의 이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60피트 6인치와 90피트의 길이에 근접한 다이아몬드 안에서 이루어진다.

전문가들은 최소 150년 동안 일정한 틀 안에서 제공되어진 스탯들을 분석해왔고, 모든 세대들 또한 그 틀 안에서 새로운 스탯들을 감상해왔었다. 여기에 어떤 새로운 수학적 분석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어보였다. (그동안은 그래왔었다.)

빌 제임스가 분류법을 통해 야구계에 불러온 혁명이 발발한 뒤 30년이 지나는 동안, 증거에 기반하여 '세이버 매트릭스' 적인 구체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야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남아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빌 펠버의 '책 속의 책' 같은 저서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맨하탄 머큐리의 주필이기도 한 펠버는 필드 안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퍼포먼스에 대해 새로운 통계학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경영상의 결정과 이 결정을 필드에서의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론적인 전략 구성에 보탬이 되도록 이 새로운 자료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어드벤티지를 찾아내는 보물찾기와도 같으며, 타자의 상황별 타격에 대한 분석, 한정된 예산 안에서 이루어지는 감독의 플레이 스타일, 또는 팬들의 경제학 같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빌 펠버는 야구라는 낡은 게임을 위해 최신식의 분석물들을 생산해내도록 주도하였으며, 최근까지도 이에 대해 논의해왔다.


Q : 당신이 성장해오는 동안 당신에게 야구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시카고 남동부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야구라는건 아주 어린시절부터 나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었죠.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뒤뜰이나 공터에서 야구를 하곤 했습니다.

특히 시카고였기에 가능했던 한가지가 있는데 바로 우리가 매일 집에 돌아오면  TV에서 야구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죠. 대개 7회 전후였고, 야구는 내가 할 수도, 거기서 뭔가 (어린 나이에)배울만한 것일수도 있었기에 그런 점에서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 언제 처음으로 야구에 대한 책을 쓰는데 흥미를 가지게 되었나요?

나는 1980년대 중반(1984~1986)에 The National Pastime의 공동 저자였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신문 쪽에 좀더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당시부터 몇가지 아이디어들을 시작해보았고 점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1998년에 존 소른(John Thorn)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의 생각을 꿰뚫어보았고, 내 책의 시초가 되는 초안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Q : 당신의 견해는 야구경기에서 '규칙 - The Book'이라 부르는 것에 집중되어있습니다. '규칙 - The Book'이란게 뭔지 설명할 수 있나요? (The Book의 의미가 불분명해서 일단 '규칙'으로 번역하였다. - 역자 주)

규칙이란건 간략하게 말하면 라인업을 판단하고, 피칭의 전략을 짜고, 필드에서 히트 앤 런 같은 것들을 구사하는데 쓰이는 '편리한 지혜'라고 말할 수 있죠.

한번 살펴봅시다. 게임 안에는 수많은 편리한 지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2가지 다른 영역에 존재하고 있죠. 우선적으로, 과거 스타일의 지혜들이 있으며 이들은 확실하고 안전한 패턴으로 일을 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이죠. 그 다음으로 SABR(미국 야구연구회)과 리서치 그룹같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혜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아주 좋아하지만, 이 사람들 또한 그들만의 메아리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지요.

'규칙'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의도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관습적인 것들은 분리해내고 실제로 작용하는 것들만을 찾아내는 것이죠. 이건 예전의 아이디어들을 실제 세계의 데이터, 그리고 몇몇 결론들에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컴퓨터가 종전보다 훨씬 더 많은 야구 데이터들을 유기적이며 효과적으로 끌어모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시간의 제약 없이 새로운 연구와 데이터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게 되었죠.

기본적으로, 나는 야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원합니다. 토크쇼처럼 고함치지도, 학구적인 논문처럼 따분하지도 않은 것을 말이죠. 재미있지만 심각한 그런 것 말입니다.

Q :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점은 현대 통계학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2가지 요소 - 파크 팩터와 윈 쉐어 - 를 거칠게 다룬 방식이었는데요, 그 2가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내 책에서, 나는 파크팩터란 근본적으로 판타지 베이스볼을 위한 수치들이라고 간단하게 짚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관계적인 수치들이고 외부 요소들에 따라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킵니다. 따라서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죠. 나는 빌 제임스를 친구라고 이야기합니다만,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윈 쉐어를 야구선수의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보편적이고, 단일화된 개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시면 아마 그 이유를 아시게 될 겁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시대의 팀들은 정확히 같은 숫자의 윈 쉐어로 합쳐지게 되는 절대적인 퀄리티란게 존재하게 되죠. 빌은 랜덤한 기회가 갖는 역할을 인식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수학자이지만, 윈 쉐어 개념에서 그런 역할의 개념은 허락되지 않아요.

Q : 당신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대부분의 클로저 스탯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팬들이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해보기 위해서, 소위 '프로젝션' 이란걸 만들어보기 위해 대중적인 스탯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일단 그들은 충분한 양의 스탯을 갖고있지 않아요. 기껏해야 선수당 몇몇 샘플이나 몇백회의 짧은 피칭기록만을 갖고있을 뿐이죠.

그들(클로저)은 장래에 무엇이 일어날 지 알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양의 이닝을 던지지 않았기에. 오직 그 이유로 인해서 나는 클로저들에게 매우 회의적인 편입니다. 사실, 만일 당신이 대부분의 클로저들이 기록한 스탯들을 보게 된다면 연도별 기록에 편차가 큰 것을 알게 될겁니다. 어떤 시즌에서든 클로저들은 높낮이가 뚜렷한 편이죠.

한번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시즌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선발투수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없어요. 그가 던진 첫 18이닝만 가지고는 말이죠. 예를 들어 랜디 울프가 한번 15번 이상 등판을 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거기에 근거해서 다음번에는 16번 이상 나올거라고 예측할 수 있나요?

솔직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릴리프 투수들이 고용한 좋은 에이전트들이 팀 집행부, 그리고 팬들에게 그들의 고객이 많은 돈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죠. 스토퍼가 연간 5백만달러 이상을 받아낸 이상, 감독들은 그들에게 '있던가 아님 나가던가'의 전략을 써먹을 방법이 없습니다.

Q : 마리아노 리베라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나는 MO에 대해서 유일한 논쟁거리만을 제시합니다. 양키스가 그를 좀더 자주 써먹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에게 연평균 70이닝만을 던지게 하는 대신, 그들은 그에게 85이닝 이상을 주문해야 합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솔리드한 투수이고 평판에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문제는 모든 팀들이 자기들도 마리아노 리베라나 에릭 가니에를 갖고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실제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수는 호세 메사같은 해마다 달라지는 투수인데도 말이죠. 클로저들에 대한 예측은 일반적으로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신 그 5mil을 선발투수나 포지션 플레이어에게 쓰는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싱싱한 어깨을 가진 선수들을 클로저로 써먹고, 대신 그 돈은 다른 솔리드한 수치를 가진 선수에게 쓰세요. 그동안 반드시 선발투수들 중에서 꾸준한 워크호스를 찾아내고 투구이닝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Q : 클로저들에게는 회의적인 반면, 당신은 감독들에게 관심을 돌려서 스탯을 적용하고 그들을 전술상의 결정 - 번트와 도루 등 - 에 따라 등급화하는데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 감독들에 대한 데이터들은 얼마든지 끌어모을 수 있죠. (웃음) 나는 왜 아무도 그걸 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곧 내가 하게 될 겁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정보들을 긁어모으는 것은 또다른 책을 만드는 실마리가 되겠죠. (웃음)

나는 전술상의 결과는 감독이 할 일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는 말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감독의 역할 중 대부분은 클럽하우스에서의 리더쉽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선수들을 다루는 것, 그리고 그들이 팀의 목표를 위해 전력을 다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운나쁘게도 선수들의 '허슬'이라던가 '불굴의 용기'와 같은 것들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객관적인 분석을 요하는 주제들이 될 수 없지요.

따라서 내가 감독들의 평균점을 구하기 위해 주목핬던 점은 '사용'과 '성공'이었습니다. 그들이 경쟁자에게 이기기 위해서 어떠한 결정들 - 예를 들면 도루 시도 횟수같은 - 을 내렸는지가 되겠죠. 아직은 샘플이 적기 때문에 완벽하게 의지할만한 데이터는 얻을 수 없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Q : 나는 아직 GM들의 등급을 매겨보려는 어떠한 세이버 매트릭스적인 시도들도 보지 못했습니다만..

나 또한 누구도 그러한 작업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우 이색적인 주제이군요. 오프시즌 무브에 따라서 페넌트레이스를 승리할 수 있다는데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프런트 오피스가 야구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다들 동의할 겁니다. 그건 명백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아직, 단장을 평가하려고 시도해보는 사람들은 모호한 정보와 평범한 의견들에 기댈 수밖에 없죠. 만일 당신이 관심있게 살펴본다면,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누가 지금 단장자리에 있는지조차 몰랐었고 로스터 같은건 구단주나 집행부나 감독이 짠다고 알고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어떤 방법으로던, 내가 시도한 단장 등급화는 이런 말들을 듣는데 지쳐서 좌절하게 되었죠. '아무개 단장은 천재다'라는 말을 듣고 좀 있다 또다시 '아무개 단장도 천재다'라는 말을 하고, 다시 누군가 다른 단장에 대해 똑같은 말을 반복하곤 합니다. 물론 이게 모두 사실일리는 없죠. 모두 다 세계 최고의 단장자리에 올라갈 수는 없는거 아니겠어요? 피트 팔머의 공식에 따라 나는 솔리드한 결정들을 판별하기 위한 기초는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파라미터들을 세팅하고 데이터를 돌리는 것은 '?' 일 뿐이었죠.

데이터들을 객관적으로 보다보면 가끔 놀랄만한 것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테리 라이언(트윈스)을 예로 들어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아주 강력한 등급을 받기에 충분했죠. 그의 팀은 2005년에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그는 사이영급 투수인 요한 산타나와 계약했고, 그 이후 팀은 확실히 전보다 더 나아졌습니다. 반면, 케니 윌리엄스는 지난해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른 팀을 이끌었지만 한 해동안 평균점을 받았죠.

Q : 당신의 접근법은 '양키스의 프런트는 바보다. 하지만 그들은 돈을 가지고 있다.' 라든가 'A's는 아주 명석하지만 그들은 재정적으로 완전해질 수 없다' 등의 논란을 몰고오기 때문에 나에게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나는 '돈을 낭비하는 것이 쉬운 방법이다' 라는 말을 썼고, 몇몇 빅마켓 팀들에게는 그게 아마 사실일 겁니다. 미디어는 그 말을 더더욱, 그리고 팀 집행부는 그 말을 훨씬 덜 받아들이겠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월트 자게티입니다. 그가 몇해에 걸쳐 해놓은 것들에 대한 데이터들을 들여다보면 왜 세인트루이스가 지속적인 컨텐더가 되었는지 더 쉽게 알 수 있지요. 자게티와 라루사 사이에서 카디널스라는 팀이 재능있는 선수들을 영입하고 써먹는 방법을 정말 잘 알고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Q : 내가 '책 속의 책'을 집어들기 전에, 나는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들이 예산을 분배하는 방법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왔었습니다.

아..  절대 아니죠.

Q : 그렇다면 또다른 새 컨셉 - 팀 구성에 대한 분석에서 당신만의 접근법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내 생각은 팀들이 동일한 로스터 슬롯을 사용할 지라도 폭넓은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타와 리저브 멤버들, 그리고 투수와 포지션 플레이어 사이에서 예산을 분배함에 따라 우선순위에 차이를 줄 수 있죠.

이런 생각에 대한 기원은 사실 맨하탄 머큐리에서 편집장을 맡으면서 내가 결정해야 했던 예산문제들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신문 전체의 예산을 잘 짜서 각각의 직원들에게 연봉을 줘야 했고, 그들은 내 비지니스에 가장 필요한 순서대로 배치되었죠. 이건 야구와 똑같습니다. 각각의 GM들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다른 의견들을 갖고있고, 그들의 예산을 그에 따라 분배하죠.

다시 누군가의 패턴을 예로 들어봅시다. 존 슈어홀츠는 꾸준하게 예산의 상당량을 투수진에 투자했죠. 다른 사람들은 불균형적인 돈을 한두명의 슈퍼스타에게 쏟아부었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Q : 그것이 또다른 흥미로운 질문을 가져왔군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오버페이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웃음) 그건 당신의 '오버페이'가 갖는 의미에 따라 다르겠죠. 아시다시피 '책 속의 책' 에서 나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리그 평균값에 따라 계통적으로 연봉 데이터들을 적용하고, 어떤 팀이 그들의 총 페이롤에 비해 가장 생산성이 높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자 했죠.

그래서, 에이 로드가 오버페이되었냐고요? 한정적으로 '필드 안에서의' 생산성만 따지면 그렇습니다. 지난 2년간 그는 뛰어났었지만, 그의 엄청난 계약은 연평균 10mil 정도가 오버페이되었지요. 여기서 애널리스트로서의 나는 스탯들이 모든걸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A-ROD가 그가 몰고 다니는 팬들과 좌석수를 위해 그 돈을 받는다고 한다면, 또는 레인저스나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마켓 가치를 위해서라면, 또는 새로운 미디어 계약을 위해서라면, 아니면 그 등등의 이유가 있다면 그가 받는 돈은 합당합니다.

나는 그가 받는 돈이 어떤 가치를 위해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만, 그러한 가치가 존재하는건 분명합니다. 아마도 이게 야구에서 이기기 위함인지는 누구도(그를 고용한 탐 힉스 이외에는) 알지 못하겠죠. 실물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방정식을 충족시켜주는 여러가지 다른 팩터들이 존재하니까 말입니다.

이 책을 출간하려는 이유 중 한가지는 왜 구단들이 이상한 짓을 하느냐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테리 라이언을 언급했었는데, 그가 단장직을 맡은 첫 볓년간은 아주 끔찍했었습니다. 팀의 최종순위에 기초해본다면 그는 분명 해고되었어야 하죠. 그가 짤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국 강력한 퍼포먼스로 돌아왔고, 나에게 스몰마켓 팀인 미네소타가 라이언이 결국 팀을 장기간동안 강력하게 만들어줄 사람임을 알고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실력과 연봉의 불균형 역시 마찬가지 문제죠. 내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한가지 사실은 패배하는 팀들은 가끔 어처구니 없는 계약을 오퍼하곤 하는데 그 이유가 그 선수들의 스탯보다는 오히려 필드 바깥쪽에서의 효과에 기인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가 90년대 중반에 했던 트래비스 프라이맨의 계약을 봅시다. 몇몇 사람들은 아마 타이거스가 단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런 엄청난 계약을 안겨줬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타이거스는 그들이 패배자라고 시인하기보다는 뭔가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후에 그런 낭비를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거죠.

Q : 당신의 설명에 따르면 많은 메이저리거들이 실력에 비해서 오버페이되어있지만, 또한 그만큼 많은 선수들이 제값을 못받고 있다는 것인데요..

나는 확실히 메이저리그에 소속된 어떤 선수도 생산성과 샐러리가 일치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프리 에이전트들은 시장에서 너무 많은 돈을 받지만 젊은 스타들은 리그에서 7년차가 되기 전에는 그들이 가진 영향력에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죠. 그래서 그들은 몇십만 달러에서 고작 몇백만 달러에 만족해야 합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많은 금액이지만, 프리 에이전트로서 마켓에서 받는 돈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돈이죠.

Q : 당신은 야구계의 밸런스에 대해서 낙관적인가요?

지금 이순간에 뭔가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데이터를 들여다본다면 페이롤과 순위 사이에는 확실한 상관관계 - 90% 후반대이거나 가끔은 70~80% 정도 - 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거에요. 부유한 팀들은 거의 항상 선두권으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2000년 쯤 부터는 상황이 조금씩 변화해서 상관관계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 30% 정도 수준으로 되었죠. 스몰마켓 팀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이기고 있어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아마 팀 확대도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아마 단장들은 좀더 요령이 있게 되었을거고, 아마 연봉구조가 미디어가 말하는 것 - 양키스와 레드삭스가 그들의 디비젼인 AL East를 다른 누구보다도 돈을 많이 쓰면서 지배하고 있다 -  처럼 어그러져있지는 않은지도 모르죠. 그밖에 몇가지나 이유가 더 있는지도 모릅니다.
해마다 주기적인 요소들이 있고, 어떤때는 돈이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어떤때는 아니라는 사실에 저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야구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가능한 변수들이 많으니까요.

Q : 비평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당신의 저작물이 받는 평가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내 책에 대해 환호를 질러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현재의 반응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나는 1897년 시즌에 대한 다음 책을 확실히 더 기대하고 있는데, 그때 야구 역사상 위대한 페넌트레이스였던 '나쁜 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착한 편' 보스턴 브레이브스의 배틀이 있었죠.

가장 좋은 것은 내가 글을 쓰면서 많은 것들을 배워나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플레이트에서의 참을성이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관례는 첫 스트라이크는 기다리라는거죠. 하지만 카운트별 데이터를 살펴보았죠. 그리고 초구를 칠 경우, 타자들은 .340의 타율과 .520의 장타율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지금 나는 리치 헤브너 룰 - 초구가 좋거든 무조건 배트를 날려라 - 의 신봉자입니다.

Q : '책 속의 책'을 쓴 뒤에 당신은 더한 야구팬이 되었나요, 아니면 덜한 팬이 되었거나 그대로인가요?

아마 등을 기대고 앉아 즐기는 대신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 조금 지나치게 분석적이 되긴 했어도, 제가 더한 '야구팬'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웃음)



독특한 시각을 가진 재미있는 글이었다. 특히 필드 외적인 가치에 대한 부분과 페이롤 격차에 따른 성적차가 오히려 줄었다는 부분이 내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애널리스트라 그런지 말이 무쟈게 어렵다. 정말 OTL인 부분은 대략 해석했으니 정확한 의미를 알고픈 분이 계시다면 원문을 참조하길 바란다.

이제 겨우 1개를 해석하고 리스트를 보니, 내가 이걸 미쳤다고 왜 잡았을까 하는 후회가 프로토 쓰나미처럼 밀려온다..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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